2021. 4. 17.-19. 요약생활 17, 18, 19

2021. 4. 17. 토. 더할 나위 없이 좋음

토요일에 느즈막히 일어난 건 오랜만이다. 책을 다 읽어둔 덕이다.

홀로 읽을 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도, 이양수 선생님이 해설해 주시면, 아! 그게 그 말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친다. 독서모임을 하면 할수록, 책의 신비함을 느낀다. 크게 두 가지인데, 이해하는 법과 기억하는 법이다. 첫째로, 책은 읽는다고 이해되지 않는다. 관점을 갖고 혼자 물어가며 읽어야 이해된다. 관점 잡는 일을 도와주는 선생이 있다면 이해가 더욱 빠르다. 단, 선생도 틀릴 수 있으니 그게 맞는지 혼자 곱씹어 내 관점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둘째로, 책을 읽고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휘발된다. 말로 하든 글로 쓰든 무언가 남겨 놓아야 머리에 남는다. 특히, 관점이 잡혀있지 않으면 말도 글도 안 나온다.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거나 필경사처럼 배껴쓰다 끝난다. 그런 건 이해도 안 되고 기억에도 안 남는다. 안 하느니만 못한 짓이다.

시켜둔 책이 왔다. 매형의 생일선물로 20만 원 책을 15만 원에 샀다. 드워킨의 법학과 이것 저것을 샀는데, 말로만 듣던 김훈의 『풍경과 상처』를 이제 읽게 됐다. 궁금하다.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이라는 책도 샀는데,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부터 페미니즘까지 현대 사상가 열여섯 명을 톺아본다. 알고보니 『다시 쓰는 서양근대철학사』를 썼던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작품이었다. 저 둘은 함께 읽어야지 싶다.

책을 몇 권 뒤적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잤다.


2021. 4. 18. 일. 어제보다 좋음

약속이 두 개나 있어 바쁘게 움직였다. 지원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TC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만난 세 친구들은 모두가 어른이었다. 삶에 국면phase이라는 게 있다면, 그들의 삶은 이제 나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깨달았다. 친구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를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목표라는 게 원래 경쟁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경쟁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과거의 자신이라도 앞에 두고 견주어야 했으므로, 참으로 치열하게들 살아왔다. 소박한 안정을 느끼고들 있는 것 같아 보기에 좋았다. 이제 결혼과 출산, 육아, 부모님의 사망, 자녀 교육 같은 할일들이 앞에 남아 있겠지.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목표를 잃어 흔들리는 모습이 슬그머니 보였다는 점이다. 목표를 잃으면 돈에 집중한다. 돈이 제일 눈에 잘 보이는 목표라서 그렇다. 언어가 됐든 악기가 됐든 배우는 맛을 알면 그 방황이 사라질 텐데, 회사에서 전력을 쏟고 온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다.

아직 나는 (그에 비해, 라는 말을 쓰지는 않겠다) 국면을 전환하지 않았다. (못했다, 라고도 쓰지 않겠다) 친구들은 내가 철학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현실감을 잃지는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그래서 굳이 “남들 세계일주 할 때, 나는 책으로 세계를 돌아다닌 것”이라고 말했다. 귀여운 수준의 자기변호였지만, 나는 그래도 사람들이 ‘코인도 좋지만 하이데거를 뒤적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결국, 내가 모아둔 돈을 써가며 2021년을 철학에 날린 것은 패착이었노라고 쓴웃음을 짓게 되더라도, 지금 내가 가진 목표는 철학 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강 아는 일이다. 내년에 생업에 돌아가더라도, 철학을 아는 체 하며 살기보다 차라리 철학을 모르는 체 하며 사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다. 그래야 당장 내일 죽더라도 편하게 눈감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과 유학을 저울질하느라 고민이라고 하니, 다들 자기 일인 양 고통스러워했다. 5월 1일 광주에 내려가기로 했다. 양복에 다같이 맞춘 넥타이를 매고 사진을 찍는다. 나는 이 사람들이 나와 달라서 너무나 사랑스럽다.


2021. 4. 19. 월. 투명하고 기분 좋음

지원과 맛있게 아침식사를 했다. 안 먹던 걸 먹었더니 속이 좀 부대꼈다. 지원과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이리저리 다녔다.

벼르고 있던 신설동에 다녀왔다. 듣던 대로 가게 사장이 퉁명스러웠다. 가게를 나오면서 “사람이 인사를 했으면 받아줘야 될 거 아냐”하고 크게 말했다. 굳이 입밖으로 낼 말은 아니었지만, 지난 주에 마음고생한 지원을 대신한 소리이기도 했다. 살다보면 저런 사람들이 태반이라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한 군데 뿌리박고 살고 싶다. 집과 땅을 팔지 말고 ‘내 동네’로 생각하는 곳에 뿌리박아야 한다. 집값이 올랐다고 해서, 그 집을 팔고 다른 데로 이사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른 집도 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집값이 오른 것은 주택시장에 진입하는 사람들을 차단하는 효과만 있을 뿐, 집이라는 상품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의미없다. 지금 집값에 집을 팔고 시골에 내려가 노동을 ‘졸업’한 채 살겠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돈이고 뭐고,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후계동’ 사람들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0년을 두고 보면, (작년 여름과 겨울 한때 거래량이 늘긴 했지만) 매매는 평년수준이고, 전월세만 유의미하게 늘었다.
교환가치는 교환행위에 수반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볼 때, 매매량 없는 호가는 무의미하다.
http://www.kab.co.kr/kab/home/trend/market_trend03.jsp

태국 형과 전화통화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공부를 다음주로 미루자는 내용과, 유학 가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조언이었다. 유학 가라는 사람과 가지 말라는 사람 사이에 공통적으로 읽히는 생각을 알게 됐다. ‘세상에 정말 도움이 되는 내 물음’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유학을 가도 무의미하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과연 유학을 유의미하게 만드는가? 유학이 답은 아니다. 길게 보고, 평생 할 공부라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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