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운 삶을 밝히는 요약의 빛
나는 내 기억력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 매번 웃으면서 이야기하시는 ‘너 어릴 때 ~’ 하는 이야기들, 여자친구가 해주는 ‘우리 그때 기억나?’ 하는 이야기들이 나는 너무 무서웠다. 그때마다 나는 ‘아 그랬나?’ 하면서 눈치를 봤다. 참 신기하지, 난생 처음 듣는 철학자 이름과 사상은 그렇게 잘 말하면서, 왜 내 삶에는 그렇게 무지했을까?
오늘 그 이유를 알려주는 아주 흥미로운 영상을 봤다. 「요약 – 요약하기 훈련, 공부의 기본, 말과 글의 기초, 삶의 지혜」 (13:01). 요약에 대해 명지대 김익한 교수가 남긴 영상이다. 한 마디로, 나는 요약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요약은 짜깁기다. 짜깁기를 잘 하는 삶이 잘 사는 삶이다. 요약하는 일은 경험을 기억해 내 언어로 다시 풀어내는 일이다. 어떤 것을 요약할 때 그건 내 것이 된다. 요약에서 중요한 것은, 내게 제시된 경험의 공간적/시간적 배치를 따를 것이 아니라, 중요도 순으로 요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고 그대로 베껴쓰는 것은 요약이 아니다. 기억해서 내 언어로 재창조해야 한다.
지식을 요약하거나 행동 또는 일을 요약할 수 있다. 지식을 요약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염두에 두고 주기적으로 요약해야 한다. 예컨대 책을 읽었다면 일정한 분량을 읽을 때마다 책을 덮고 내용을 연상해 중요도 순으로 옮겨보는 식이다. 간단하게 메모 식으로 요약을 하고 나면, 일정한 시기마다 요약본들의 요약본을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생각노트를 만드는 것이다. 행동 또는 일을 요약할 때에도 마찬가지 방식이다. 매일, 매주, 한달, 일년마다 회고하며 글로 옮긴다. 옮긴 글은 다시 더 큰 책에 옮긴다.
이 영상의 내용은, 내가 대학원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을 놀랄만큼 정확하게 짚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내 독서력이 ‘유아적 수준’이라고 하셨다. 억울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읽은 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철학을 가르치시는 또 다른 교수님께서는 교재에서 한 의미단위*가 끝날 때마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셨다. 학문에서 일정한 수준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다들 그렇게 하고 계셨던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창의력이 editology, 즉 편집학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영상에서 말하길, 편집학은 요약하는 능력을 기를 때 체득할 수 있다. 유시민 작가도 요약을 통해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썼다고 한다. 요약은 암묵지(暗默知)를 명시지(明示知)로 변화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요약하지 않으면 우리의 지식은 어두운 곳에서 흩어진다.
내 생각노트는 이곳이 될 것이다. 오늘부터 가능한 매일, 매주, 매달, 삶을 요약해보려고 한다. 혹시 까먹을지도 모르니, 매일 알람을 맞춰놔야겠다.
*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으셔서 그런지, 문단이나 챕터마다 요약하지 않으신다. 매 순간마다 감각적으로 ‘이 부분은 여기서 여기까지가 한 의미단위야’라고 판단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로, 기가 막히게 묶인다. 교수님의 독서력에 매 수업마다 혀를 내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