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Ⅰ)

내가 겪은 죽음들

나는 살면서 두 차례의 죽음을 겪었다. 당연히, 나의 죽음이 아니라 다른 이의 죽음이었다. 하나는 초등학생 시절 시장에서 사온 토끼, 토순이의 죽음이었다. 토순이에게는 여물냄새가 났고 나는 그 냄새가 싫었다. 샴푸 거품으로 벅벅 닦아 깔끔히 토순이를 씻겼다. 드라이어로 말리니 털이 보드라워 좋았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라 품에 안고 같이 축구를 봤다. 자기 전 건초를 배불리 먹였다. 신문지를 깔고 바구니를 엎어 대강 만들어 준 토순이네 집 너머로 나는 토순이를 구경했다. 벌름이는 코와 수염을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토순이는 먹은 것을 다 토해놨다. 무슨 이유에선지 기력이 쇠해 고개를 가누지도 못했다. 두세 시간 남짓 가쁜 숨을 몰아쉬던 토끼는 점점 식어갔다. 나는 울면서 토순이에게 드라이어 바람을 쐬어주었다. 벌린 입 사이, 어젯밤 귀엽다고 만져보던 아기자기한 앞니 틈새로, 보랏빛 혀가 축 늘어졌다. 토끼는 함부로 씻기면 안 된다던 아버지께서는 혀를 끌끌 차셨다. 나는 토순이를 묻어주고 싶었으나 왜인지 역겨워서 맨손으로 만지지 못했다. 비닐봉투에 싸고 나서야 토순이를 장지로 옮길 수 있었다. 집 앞 공터에 묻고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 이후로 20여 년 동안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행운이었다. 생기가 사라진 육체에서 뿜어지는 알 수 없는 거리낌을, 나는 이내 잊고 말았다.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해 군에 입대하기까지 내게 죽음은 객관적인 현상이었다.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K-2를 잡고 실탄 사격훈련을 할 때 나는 살면서 나의 죽음과 가장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옆 사로에 선 전우의 의지에 내 목숨이 달려 있다니. 다행히 아무 일 없이 훈련을 마쳤다. PRI 훈련장에 오와 열을 맞추어 앉아 복귀를 기다리면서, 나는 점심에 먹은 짬밥을 모두 게워내고 싶었다. 나는 그 때 “죽음 없는, 내 죽음에 가장 가까운 경험”이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이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자대 배치를 받고 한 해를 보내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게 내가 겪은 두 번째 죽음이다. 할머니께서는 아흔이 넘어 요양원에서 백세를 바라보고 계셨다. 요양원에서 할머니는 목청이 제일 큰 노인이셨다. 그러나 해가 지날 때마다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치매는 할머니의 기억을 조각냈다. 찾아뵈면 늘 안방마님 자세로 꼿꼿이 앉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타령 장단으로 중얼거리셨다. “○○이 기억 나세요?”라고 여쭈면 확률적으로 대답을 하시고는 이내 자기 곡조로 돌아가셨다. 내가 입대하고 한 해가 지나자 침대에서 생활하시더니, 누나가 사윗감을 보여드리고 일주일 뒤에 돌아가셨다. 입관을 압두고 고운 옷을 입은 할머니는 나무등걸 같았다. 장의사는 한 쪽 무릎을 펴느라 땀을 뺐다고 뿌듯해했다. 죽은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엄마!” 하고 울부짖는 걸 듣고, 그제서야 눈물이 흘렀다.

나는 할머니의 죽음보다 아버지의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이 좀 더 슬펐다. 내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엄마!’ 하고 나도 아버지처럼 울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앞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 기억으로만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차라리 멀리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신 걸로 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죽음이 두렵지 않았으나, 내가 죽은 뒤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올 슬픔이 두려웠다. 고요한 새벽 초상집에서 할머니의 영정을 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을 보는 일이 생각보다 역겹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할머니가 화장터에 들어간 이후였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