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라는 말이 있다. 퇴고의 어원은 두 사람이 함께 시어를 정하는 고사에서 비롯한다.
당나라 시인 가도는 시를 쓰며 고민했다.
‘중이 달빛 아래에서 문을 밀다(퇴堆)라는 말이 좋을까 아니면 문을 두드리다(고敲)라는 말이 좋을까?’
가도는 두 글자 사이에서 망설였고, 문인 한유를 찾아갔다. 가도가 한유를 만나 퇴와 고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조언을 구했다. 이 일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널리 쓰이는 ‘퇴고’의 기원이다. ‘퇴고’는 먼저 작가 개인이 시어 선택에서 갖게 된 갈등에서 비롯했고, 작가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 대화 행위에서 비롯한 말이다. 그리고 이제 이 퇴고는 우리가 글을 쓸 때, 쓰여진 글을 계속에서 수정하는 과정, 거친 글을 깎아내는 과정, 글쓰기에 있어 필수적인 작업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우리는 왜 글을 쓸까?
우리는 단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쓴다. 이런!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공유하다니… 글쓰기란 얼마나 파렴치한 일인가? 평가받는 일을 두려워하고 스스로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 내비치는 일을 두려워하는 이 시대의 사람에게 글쓰기는 꺼려지는 일이고 낯선 일이다. 특히 퇴고는 글이 아직 완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행위이고, 우리는 이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처럼 여겨지는 글을,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무방비한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노출시킨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퇴고를 해야 할까? 아니 왜 퇴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자기 자신이 못나 보이는 일을 그리고 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공유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라면 체면치레를 한다. 사람이라면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퇴고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마조히스트다.
하지만 스스로 글을 쓰고 좋은 평가를 받길 희망하는 모든 인간은 누구나 마조히스트가 된다. 아니 되어야 한다. 여기서 예외적인 사람이 있다. 바로 천재다. 천재는 같은 시대적 상황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에서 예외적 인물이다. 천재는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재주를 부린다. 천재가 천재인 이유는 우리가 그를 땅에서 난 인간과 달리 다른 기원을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천재의 기원이 하늘, 낯선 곳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닌, 우리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공유하는 인간들에게 퇴고는 부끄러운 행위다. 왜냐하면, 같은 기원에서 난 인간들이 함께 똑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기 생각을 밝히며 글을 쓰는 사람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동시에 퇴고를 통해 그 작업이 드러날 때, 별것도 없는 다른 사람과 다른 어떤 미약한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부끄럽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작업을 종국에는 견뎌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중에서 진짜 마조히스트들도 있다.
퇴고를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동기나 이유에 대해 다루기에는 여기 이 지면이 제한된다. 나는 여기서 다루는 대상을 더 좁히고자 한다.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살펴보고, 옛날에 죽은 천재들의 글을 읽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생기고, 종국에 퇴고를 하게 되는 사람들은 왜 퇴고를 하는가?
우리가 퇴고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길 원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고를 할 때, 다뤄지는 것은 ‘맞춤법’, ‘문장의 명확도’, ‘글의 구조’ 등이다. 맞춤법의 목적은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뜻이 공유될 수 있게 만드는 글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 글을 쓸 때, 맞춤법을 맞춰야 하는 어떠한 의무도 없다. 문장의 명확함에 대한 척도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잘 드러났는지에 따라서 평가하게 되어 있다. 글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퇴고다. 우리가 퇴고를 하는 것은 이런 생각의 공유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퇴고의 목적은 아마 글쓰기의 목적과 이어져 있는 듯하다. 우리가 이렇게 추정해볼 수 있는 근거는 글쓰기의 목적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고 퇴고의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나의 글이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퇴고의 목적은 단지 더 좋은 글을 쓰는 일을 이루는 것에서 넘어설 수 있다. 글쓰기는 나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을 전하고 공유하는 일은 나 자신의 변화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퇴고의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나의 글이 더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다. 퇴고는 나의 글을 변화시키고 그 글을 쓰는 나의 생각 과정, 문장 순서, 말하기, 글쓰기의 교정을 요구하는 기묘한 과정이다. 글쓰기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퇴고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나의 생각이 공유될 수 있도록 나를 교정하는 과정이다. 나는 퇴고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적합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이런 까닭에 퇴고는 글쓰기와 기묘하게 이어져 있다. 퇴고는 글쓰기와 독립된 어떤 활동으로서 글쓰기와 이어져 있다.
다시 고사로 돌아가서 퇴와 고 중, 가도와 환유는 무엇을 택했을까?
밀고 두드리는 것 중 무엇을 선택했든, 그 두 인간은 정신적으로 함께 무언가를 공유했다. 공유된 그것은 가도의 시 일 수도 환유의 시 일 수도 있다. 여기에 정답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 퇴와 고로 그 두 인간이 함께 무언가를 공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