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샾죽돌이]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법

바버샾죽돌이

돈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돈이 많아서 하기 싫은 일도 안 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실컷 하고 싶다. 사람들은 이런 걸 경제적 자유라고 한다지. 굳이 ‘경제적’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야 하나 싶다. 돈이 많으면 그냥 자유롭다. 아하, 굳이 자유 앞에 ‘경제적’이라고 한정짓는 사람은 오히려 겸손한 것일까?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도, 철학적 자유도 될 수 없음을 인정했다는 뜻일 테니까. 아무튼 노동 없이 생계를 유지하는 삶이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삶이라고들 말하는 것 같다.

경제적 자유는 어떻게 이루는 것일까? 경제적 자유를 추구한다는 사람은 도처에 널렸어도, 그런 자유를 성취했다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나는 이제 더 많은 돈을 추구하지 않아.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 남은 시간을 쓸 거야.’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나? 다들 경제적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고 외쳐대면서, 나처럼 힘들이지 않고 돈 벌고 싶은 도둑놈 심보를 이용해 돈 벌려는 사람들만 득시글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보면, 공부 좋아하는 사람은 돈 말하기를 꺼린다. 역시, 나밖에 없는 건가. 적당히 지적이고, 적당히 속물적인 내가 돈 버는 방법을 탐구해 본다.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 중 백인 부호 캘빈 캔디의 흑인 집사 스티븐. 출처=스크린랜트.

돈 버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반드시 비밀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왜냐? 너무 당연하다. 바보가 아니니까. 그런 방법을 아는 사람은 혼자서만 알 테니까! 아니면 적어도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공개하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숨길 것이다. 모두가 아는 방법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돈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것이다. 내가 돈을 벌려면 결국 남의 지갑에서 빼내와야 하는 것이다. 돈 버는 방법이란 내 지갑에서는 빼앗기지 않으면서 남의 지갑에서는 많이 빼내는 기술을 말한다. 모두가 그걸 안다? 강강수월래를 하는 사람들처럼 모두의 돈이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도 돈을 벌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경제적 자유를 말하는 사람, 다시 말해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돈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인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딱 하나 있다. 은행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쉽게는 할 수 없는 방법, 돈을 돌리지만 돈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바로, 대출이다. 돈을 빌려주는 것은 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돈을 벌려면 빌리면 된다. 돌고 도는 돈은 돈을 낳는다.

그런데 어떻게 돈이 돈을 낳는가? 천박한 사람들은 이 질문 앞에서 딱 멈춘다. 그냥 은행과 대출이 돈을 낳는다는 것까지만 보고, 빨리 돈을 빌려야 한다고 성화다. 특히, ‘부자아빠’ 뭐시기 하는 역겨운 인간이 유난스럽다. 자,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질문은 누가 처음으로 했을까? ‘빨갱이’ 마르크스 선생님 되시겠다. 그의 답은 결국 생명이었다. ‘낳는다’는 말에서 보듯이, 그리고 ‘자본’이라는 말이 동물의 마릿수를 세던 말에서 나왔듯이, 낳는 능력은 생명에게만 있고,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척도는 생산능력의 크기이다. 자본주의의 이 비밀을 공산주의자가 발견했다. 돈을 빌려 생산수단을 사고, 갚고 남을 만큼 생산해 팔면, 돈을 만들어낸 셈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만드는 방법은 이것이 유일하다. 우리가 흔히 무생물처럼 여긴 ‘부’도 결국 생명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왜 부를 무생물처럼 여겼던 것일까? 여기에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이유가 있다. 결과는 원인에 귀속된다는 형이상학적 진리 말이다. 인과율이라 불리는 이 진리는 ‘생산물은 생산자가 소유한다’는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제작물의 원인은 제작자와 도구이다. 도구도 제작물의 일종이라, 도구의 제작자 역시 최종 제작물의 원인이 된다. 도구의 제작자도 또 다른 도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도구의 제작자도 제작물의 원인이 된다. 또 다른… 이렇게 제작물은 무한한 제작자를 원인으로 둔다. 마치 우리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가 무한히 많은 것처럼. 이 도식이 생산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생산물의 원인은 노동력과 생산수단이다. 생산수단은 기본적으로 도구이지만, 도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공장이라는 복합물이 됐다. 공장은 기계와 동력, 자본과 토지로 구성된다. 그것들 각각의 제작자는 생산물에 지분을 요구한다. 자본과 토지는 제작물이 아니므로, 제작자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소유자가 제작자의 역할을 대신한다. 소유하기만 해도 돈을 낳는 마법, 피와 땀이 서리지 않은 생명 없는 부, 이자와 지대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불로소득이란 노동자 없는 생산물, 생명 없는 재생산이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찾던 경제적 자유가 바로 자본과 토지의 소유였던 것이다. 다 아는 말을 뭐 이리 길게 썼냐고? 그럼 읽지 말던가, 십새야. 올해 기준 4인가족 중위소득은 월 약 6백만(6,097,773)원, 연 약 7천만(73,173,276)원이다. 기준금리는 연 2.75%이다. 중위소득만큼 연간 이자를 받으려면 얼마만큼의 자본이 있어야 할까? 약 26억(2,660,846,400)원이다. 26억을 은행에 넣어두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광화문 세종로에 있는 사무실을 사면 된다. 통상 보증금 8천에 월세 6백으로 임대된다. 과거 실거래가를 살펴보니 2022년 180억에 매매된 기록이 하나 나온다. 이렇게 보니 지대보다는 이윤이 훨씬 싸게 먹힌다. 물론,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가치가 무럭무럭 자라는 건 현금이 아니라 부동산이다. 작은 성공을 쌓아 큰 성공을 이루랬다. 처음 세우는 목표인 만큼 안전하게 26억으로 세워 보자.

.. 자, 이제 이런 똥글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0,030원이니까, 26억을 벌려면 26만(265,289)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8시간 일한다고 치면, 3만(33,161)시간, 6천(6,632)주, 127년하고도 6개월이 걸린다. 일해라, 노예야,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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