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마스터의 오늘의 똥 5

따릉이마스터

인간은 불안정하면 불안정할수록 안정적인 것을 찾는다. 그 안정의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조건이 바로 ‘돈’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한 상태에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이 보장되어야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안정감을 느끼는 것들은 꽤나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은 통장에 월세 낼 돈이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풀린다. 어떤 사람은 아침 출근길 편의점 커피를 사 마시는 그 여유가 안도감을 준다. 어떤 사람은 병원비 걱정 없이 부모님 건강검진 예약을 넣을 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모든 것들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인간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돈일 것이다. 돈은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간에, 그 자신의 이후 발걸음을 예비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돈은, 돈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산업사회를 지나 본격적으로 소비사회에 진입한 이후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장을 가지고 있는 현재에 돈은 그 어떤 것보다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 힘은, 돈이 일반적인 등가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예증된다. 돈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돈’으로 환원시킬 수 있게 만들었고, 돈이 지닌 가치는 수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게 되었다.

Quentin Matsys, The Money Changer and His Wife, 1514, Oil on panel, 70.5 cm × 67 cm (27.8 in × 26 in). 출처=위키피디아.

돈은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선택의 범위를 좁히거나 넓힐 수 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제공되는 선택지는 다양하다. 그러나 돈이 없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선택지는 협소하다. 연애를 할 때에도, 무엇인가를 학습할 때에도, 결혼을 할 때에도, 자녀 계획을 세울 때에도, 건강 계획을 세울 때에도 돈은 사람들에게 선택지의 범위를 제공한다. 선택지의 범위를 다르게 말하자면 선택의 결과가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에 돈이 있다면, 그 돈은 어떠한 것을 선택함으로 인해 대면할 수 있는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최대한 안정적인 상황으로 자신의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한다면, 그 돈이 없음으로 인해서 체감되는 불안정성은, 실상 그 불안정성이 현실화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의 불안함을 제공한다.

강한 경쟁사회를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와 같은 경우에 돈은 더더욱 강한 힘을 얻는다. 돈은 즉각적으로 보여지는 ‘외양적인 것’을, 즉각적으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결과적인 것’을, 누군가보다 더 위로 쉽게 설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특히 외현적인 것에는 근대화가 되었지만, 실상 전-근대적인 사회인 한국 사회는 분화되거나 체계화되어 있지 않기에, 그 전체적인 하중을 개인이 짊어진다. 복잡한 사회의 하중을 온전히 개인이 책임지고, 개인의 삶과 함께 그 집단의 환경까지 고려해야 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돈은, 그렇기에 더더욱 중요한 가치가 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야만 하고 ‘개인의 삶’을 영위해야만 하며 ‘가족’들까지도 고려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면 그 기본적인 영위가(한국 사회에서의 삶이) 불안정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거, 생활 환경, 교육, 연애, 가족, 건강 등 — 한국 사회에서 ‘돈’은 단순한 생활비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언어’가 되어버렸다.

생존에, 가치 기준에, 의미에 ‘심급’이 되어가는 돈은 인간 생의(어쩌면 이 세계까지도) 전반적인 것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 영향력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에도, 우리의 무의식에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의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돈이 없기에 못했던 것들을 연애, 결혼, 공부, 건강, 가족, 삶 자체. 그리고 이제 그 말은 어느새 이렇게 굳어버렸다.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이 말은 실제의 경험에서 도출된 말에서 시작하였지만, 나아가 지속적으로 일어난 경험들의 중첩이 만들어 내 인간의 무의식까지 스며든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들과 선택들에 있어서 ‘돈’에 그 의미를 둔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에는 언제나 ‘돈’이 자리하고 있고, ‘돈’에 그 선택할 수 없음의 요인을 가져다 둔다. 이는 우리가 ‘자유롭게 무엇을 할 수 없는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과 같다.

잠시 여기서 멈춰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정말로 ‘돈’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럽게 무엇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겠고, 어느정도는 아니라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는 분명히 ‘돈’에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고, 이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성장한 사회의 하중은 역설적이게도 개인이 짊어져야 하기에, 우리의 생존의 언어는 분명히 ‘돈’을 중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부과된 사회적인 삶, 개인적인 삶, 가족 공동체로서의 삶을 ‘평범하게’ 존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돈이 없다면 ‘평범하게 존속’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고, 생존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떠한 불확정성이 있다 한들, 그것을 넘어서는 어떠한 결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히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평범함은 생존이 되었고, 돈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존’이라고 할 때, 기존의 삶으로의 생존이거나 다수가 생각하는 평범함으로의 생존이 아닌 ‘다른 삶’으로서의 생존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그 삶은 친구 셋이서 10평짜리 집을 나눠 사는 삶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스펙도 없지만,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며 마음 편히 잠드는 삶일 수도 있다. 다른 삶의 양식을 살아가기 위한 ‘자유로운 선택’은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와 의미들을 상기시키게 만들거나, 사회 내에서나 관계 내에서의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만든다. 물론 다른 삶으로서의 생존을 살아가려 할 때에 돈이 많다면, 그 돈은 돈이 없을 때의 한계보다 더 넓은 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어려움이나 불편함도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삶으로서의 생존, 그 삶은 평범함으로의 생존을 추구하는 자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게 된다고 할지라도, 마냥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써 오는 가치들과 의미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이 다른 사회를, 다른 관계를, 다른 현실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돈’이 없기 때문에 못한다는 것은 그렇기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 인해서 가려진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선택이며, 이 선택은 불안정성을 용기 있게 감내하는 행위이다. 다시 말하자면, 돈이 필요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모든 선택이, 자유가, 능력이 제한되었다고 느끼는 그것이 오히려 돈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실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아니다. 우리의 ‘선택’이,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과 ‘자유’가 우리가 돈에 환원되지 않는 ‘다른 것’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만남 안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돈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세계 속에서도, 돈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만 열리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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