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마스터의 오늘의 똥 4

따릉이마스터

우리가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로 ‘일반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 ‘일반적이다’란 “일부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전체에 걸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단어를 일상에서 흔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물론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모든 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병증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라는 문장에서 ‘일반적이다’는 바로 그런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이 ‘일반적이다’라는 말은 사실상 우리 모두가 하나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세계 안에서 공유하거나 알 수 있는 어떤 기준 위에 서 있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낳는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그 ‘하나의 세계’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세계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방식으로 주어지는가?

William Alison “Bill” Anders. Earthrise. Hasselblad 500 EL 250mm, 1/250, F11. 1968. 12. 4. 출처=나사.

엄밀히 보면, 인간은 누구나 세계 안에 존재하지만, 그 ‘하나의 세계’란 언제나 특정한 조건과 관점에 따라 구성된 결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이라는 말은 그저 모두가 아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이 ‘가능해지기 위한 세계의 구성 조건’까지 함께 전제하고 있다. ‘일반적’이라는 말은 그렇게 특정한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술어인 셈이다.

이를 종교적 언명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신의 형상이며, 세계는 신의 창조물이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설정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그 형상대로 세계를 다스릴 책무를 가진다. 여기서 인간과 세계는 ‘신’이라는 기준 아래 재구성된다. 이런 세계관 안에서는 ‘인간이 신의 형상이다’라는 언명이 바로 ‘일반적’인 것이 된다. 이것은 그 세계 안에서만 통용 가능한 ‘일반성’이다.

이렇듯 ‘하나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그 세계를 설명하는 술어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인간은 시공간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관계를 맺고 변화하는 존재다. 인간이 처한 조건과 맺는 관계가 달라질 때, 그 세계를 설명하는 술어들도 함께 변화한다. 10년 전과 지금의 ‘일반적인 것’이 다르고, 직장인과 대학생, 가정 내 구성원이 처한 ‘일반적인 것’이 다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일반적’이라는 것은 단일한 기준 위에 서 있는 절대적 진술이 아니라, 특정 시공간적 조건 속에서만 유효한 잠정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이다’라고 말할 때, 사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함께 던져야 한다. “그 일반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일반성을 가능하게 한 조건은 무엇인가?”, “그 일반성은 무엇을 배제하거나 은폐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일반성’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일반성’이 작동하는 구조 자체, 그 구조의 힘 아래에서 망각되거나 소외된 우리의 삶, 우리의 조건, 우리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그 구조의 힘 안에 있지만, 그 힘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자리에 서 있는 우리의 세계를, 우리의 자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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