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마스터의 오늘의 똥 2

따릉이마스터

사람들은 너무 쉽게 툴툴거린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 주변을 보면, 툴툴거림이 단순한 불만을 넘어 하나의 습관처럼 자리 잡은 듯하다. 여기서 ‘쉽게’란, 마치 로또를 기대하듯,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바라는 태도를 의미한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개인의 특출한 능력 덕분일까, 아니면 사회 구조의 불합리함 때문일까?

툴툴거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구조적 불합리함에서 오는 불만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불평이다. 첫 번째 경우는 나도 공감한다. 사회가 주는 부당함과 개인의 한계를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푸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툴툴거림은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 부딪히는 현실의 벽에서 비롯된다.

투덜이 스머프(Grouchy Smurf). 출처=smurfs.com.

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툴툴거림은 다르다. 이는 노력 없이 결과만을 바라는 태도에서 나온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불평, 그리고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는 말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의 부족함에서 찾기보다, 환경 탓을 하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이런 태도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아이는 세상의 본질을 가장 빨리 파악한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금방 깨닫는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그조차도 잊어버린 듯하다. 어른이란 존재가 사라진 시대, 우리는 단순한 욕망만을 따라가는 ‘에리식톤 컴플렉스’ 속에 빠져 있다.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문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명예든 돈이든, 그 무엇이든 성취하려면 그에 걸맞은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간과한 채, 노력 이상의 보상을 기대한다. 이런 태도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불합리한 구조 안에서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물론 예외적인 사례는 존재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환경, 외형적 요소가 본질보다 우선시되는 사회적 구조. 하지만 그런 현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과정의 고단함 없이 결과만을 원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나치게 세속적이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학문조차 욕망에 의해 왜곡되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본질과 의미는 희미해지고, 학문조차도 그저 사회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푸코가 지적했듯, 지식과 권력은 얽혀 있으며,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살아간다. 문제는 대부분이 이 흐름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 흐름을 따르는 것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툴툴거림’만큼은 역겹다. 이는 결국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본질적인 성찰 없이 단순한 불만 표출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툴툴거림을 감내하는 것은, 결국 약자의 몫이 된다. 약자는 더 깊은 이해를 갖지만, 정작 툴툴거리는 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삶은 어차피 어느 정도의 운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운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과정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욕망이 없는 자는 운을 바라지 않지만, 욕망만을 좇는 자는 노력 없이 운이 오기만을 바란다. 그것이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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