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데카르트, 방법서설


첫 문장. “양식(bon sens)은 세상에서 가장 잘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들뢰즈도 <차이와 반복>에서 이 구절을 분석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시작부터 앎과 나눔에 대해 쓴 책이다. 여기서 양식이란, “잘 판단하는 그리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힘이, 이것이 본래 사람들이 양식 혹은 이성이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양식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으로, 짐승으로부터 인간을 구별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지식(진리)은 단일하다. 지금까지 모든 학문에 다양한 의견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것이 확고한 지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성 혹은 양식(bon sens)은 그러한 지식을 명석 판명하게(clar et distinct) 알아내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개체적으로 다르나 형상으로는 단일하므로 모두가 그러한 양식을 갖고 있다.

수학은 근거가 확실하고 명증한 것이다. 반면 철학은 모든 것에 대해 그럴 듯하게 말하는 수단을 제공한다며 폄하한다. 철학은 오래 논의했으나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니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진리를 찾아 학교에 갔으나 찾지 못했고, 책에서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으며, 세상이란 책으로 떠났지만 찾지 못해 자기 자신 안에서 찾기로 했다.

하나와 다수를 비교한다. 홀로 만든 작품은 완전하나 다수가 개입하면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토대를 모두 제거해 다시 처음부터 쌓아 나가야 하는데, 실제 건축이나 도시계획, 입법에서는 그러한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학문은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만한 자들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겸손한 자들은 섣불리 권위에 복종한다.

진리는 발견하기 힘들다. 그래서 진리는 홀로 발견했다 할 때 더욱 그럴 듯하다. 다수의 의견은 진리를 발견할 수 없으므로.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논리학, 기하학, 대수학의 이점을 포함하면서 결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데카르트는 철학의 부분 중에서 논리학을, 수학의 부분에서는 기하학적 해석학과 대수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각각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지 못하거나, 판단 없이 말하거나(논리학), 너무 추상적이고 쓸모가 없거나(기하학), 특정한 규칙이나 기호에 너무 사로잡혔다(대수학)는 것이 단점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가 제안하는 방법은 다음 네 가지다.

1. 조금이라도 의심가는 것들은 판단에 포함시키지 말 것
2. 문제를 가능한 한 작은 부분들로 나눌 것
3. 가장 단순한 것에서 점진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올라갈 것. 자연적 연결관계가 없어도 순서를 가정할 것.
4. 누락이 없음을 확신할 만큼 점검할 것.

가장 간단한 것에서 출발해 복잡한 결론에 이르는 것은 기하학적이다. 기억과 이해를 위해 기호로 지시하는 것은 대수학적이다. (가장 단순한 것은 절대적이다. 정신지도규칙 제6규칙 참조.)

하나의 사물에는 하나의 진리뿐이다.(진리대응설?) 이 방법대로라면 어려운 문제, 모르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방법은 이성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속단과 편견이다.

이성적 재건축(혁명?)은 판단중지이다. 판단을 중지하면서도 행동할 수 있도록 임시로 근거할 바는 다음 네 가지다. 이 네 가지로 행복에 가까워진다.

1. 기존의 법과 관습, 종교, 사려깊은 자들의 의견을 따르자는 것
2. 한번 결단한 것을 확고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자는 것
3. 외부의 운보다는 내부의 사유를 바꾸자는 것, 세계의 질서보다는 욕망을 바꾸려 하자는 것
4. 직업 중 가장 좋은 것을 택하자는 것

몽테뉴의 <수상록> 중 “레이몽 스봉의 변호”에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 je?)”가 나타난다.

당대 회의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방법적 회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행위에 집중했다. 회의주의는 무엇인가?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주장과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 회의주의는 의심하기 위해서만 의심하고, 늘 우유부단해서 어떤 활동도 낳지 못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입장이다.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는 기준은 신이 준 것이다. 신앙의 진리와 임시 준칙들을 바탕으로, 이외의 모든 의견을 검토하자는 것이 데카르트의 입장이다.

의심 가능한 모든 것을 거짓으로 돌린다. 데카르트에게 의심은 분할이다. 데카르트에게 의심 불가능한 것은 절대적인 것, 순수한 본성, 단순한 것, 하나의 것이나 의심 가능한 것은 상대적인 것, 관계들, 복합적인 것, 다수의 것이다. 이런 사물들은 정신의 예리함으로 식별해야 한다. (정신지도규칙 제6규칙) 명석/판명(clar et disticta)은 바로 이 정신의 예리함으로 사물을 단순하게 할 때 얻을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따라서 결코 의심 불가능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은 “내가 속는다면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sum)”(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1.26.)라는 문구와 공명한다. 부분들로 쪼개져 늘 부분으로 나뉘는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의심 가능하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철학의 제일원리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하는 능력은 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영혼이라고 주장한다. 영혼은 신의 본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완전한 존재와 독립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므로 영혼의 존재 자체가 신 존재의 증명이다.

신의 완전성 이외의 어떤 전제도 없이 진리에 이르는 방법을 자연학적 대상을 예로 들며 설명한다.

자연법칙이 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빛, 천체의 운동, 불, 무생물과 식물, 동물, 인간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물은 영혼 없는 자동기계이나 인간은 영혼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영혼을 가졌음을 알아낼 수단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과 언어를 조합해 다른 기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어 영혼은 물질의 산물이 아님을 주장한다.

자연에 대한 입장. 자연을 기술의 결과로 보는 시각은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만든다.

데카르트는 꽤나 정치적이다. 학문을 위해서는 모두가 발견한 것을 대중에게 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뒷사람은 앞사람이 이루어놓은 것에서 시작하면서,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애와 작업을 하나로 합치면서, 각자가 각기 나아가는 것보다 우리 모두가 함께 훨씬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이다.” [63] 제6부. 4부 복합적인 것의 의존, 완전한 신과 타인에 대한 의존을 보라. 그러므로 관찰에는 남의 도움이 중요하므로 불명예를 피해야 한다. 이에 따라 데카르트는 라틴어가 아니라 쉬운 프랑스어로 철학해야 한다.

반면 철학자의 고독도 인정한다. 데카르트는 당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무용하고 불확실한 데카르트.” (블레즈 파스칼, <팡세>, 297) 그러나 데카르트는 동굴의 비유를 비틀면서 여유롭게 응수한다. 비판자 대부분이 “구별들과 원리들의 모호성”을 가진 사람들이며, 불리하지 않으려 정상인을 동굴로 끌어들이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평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 저작들을 출판하면서 어두운 동굴에 창을 열어 빛을 들인다.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는 작업은 “시작한 당사자가 아닌 다른 누구에 의해 제대로 완성될 수 없는 어떤 작업”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오랜 사유 끝에,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타나고 결과가 원인을 증명하는, 모종의 해석학적 선순환을 발견한 듯하다. 이에 대해 순환논증이라 비판하는 자들에게는 20년치의 사유를 두세 마디 말로 안다고 상상한다며 일갈한다.

인용

“잘 행하기 위해서는 잘 판단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또 가장 잘 행하기 위해서도, 다시 말해 모든 것들 그리고 동시에 획득 가능한 다른 모든 선들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가장 잘 판단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28] 제3부.

최소한의 의심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절대적으로 거짓으로, 던져버려야 한다. [31] 제4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이 진리는 너무나 확고하고 너무나 확실해서, 회의주의자들의 가장 과도한 모든 억측들도 흔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그것을 주저 없이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32] 제4부.

우리가 매우 명석하고 매우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삼을 수 있다. [33] 제4부.

만일 내가 홀로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서 독립해 있었다면, … 내가 나에게 없다고 인식하는 나머지 모든 것을 나로부터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나 자신이 무한하고 영원하며 부동이고 전지하며 전능했을 것이며, 마침내 내가 신 안에 있다고 알아차릴 수 있는 모든 완전성들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35] 제4부.

(자연)법칙들은, 설령 신이 여러 세계를 창조했다고 해도, 그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세계는 한 군데도 있을 수 없는 그러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43] 제5부.

신이 지금 이 세계를 보존하는 작용은 그가 이 세계를 창조한 작용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45] 제5부.

함께 보면 좋을 책

몽테뉴, <수상록>

파스칼, <팡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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