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주역

경문

단사

상사

문언

계사전

설괘

서괘괘


독후감 2024. 11. 1.

역학은 해석의 학문이다. 간단한 세상의 이치로 복잡한 사안의 실마리를 얻는다. 세상의 이치란 바로 만물유전,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하늘 아래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한 게 있다면 아마 ‘영원한 건 없다’라는 변화의 진리뿐일 것이다. 『주역』은 이러한 이치를 사물에 적용해 의미를 길어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나는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재미삼아 사주만 한 번 봤을 뿐, 역술에는 관심이 없었다. 주역을 읽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주역을 미래를 점치는 점술가들의 책이라기 보다 사물의 변화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의미를 부여하는 학자의 책이라 본다.

이런 점에서 나의 흥미를 끌었던 건 ‘계사전’이었다. 주역은 크게 경문과 십익으로 구분된다. 경문은 64괘를 설명한 부분이고, 십익은 경문의 부록에 해당하는 열 가지 책이다. 계사전은 십익에 해당한다. 경문부터 계사전을 제외한 십익의 다른 문헌은 모두 6효와 64괘의 해석에 중점을 둔다. 반면, 계사전은 역법의 실천적 방법에 좀 더 주목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대로부터 점을 치는 방법은 거북껍데기와 뼈를 태워 갈라진 점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 복(卜)이었다. 이로부터 음양사상을 부호로 나타낸 효(爻)와 괘(掛)가 발달되었고, 점 치는 방법도 톱풀 혹은 시초(蓍草)의 개수로 괘효를 도출하는 서(筮)로 발전했다. 계사전에는 이 서법(筮法)이 수학적 서술과 함게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사주팔자라 부르는 명리학도 근원은 음양오행사상 즉 역법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학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 시도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플라톤 『국가』편에 호부견자의 원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쓰이는 것도 천문학적 산수이다. 현대에도 우주의 기원과 비밀을 파고들기 위해 전세계의 학자들이 수학적 모델을 세우는 데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이해”하고 있는가?

이해란 믿음의 다른 모습이다. 계사전 상편에 “이복서자 상기점(以卜筮者 尙其占, 미래를 점치려는 자는 그 점괘를 숭상하여야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때 “점”이란 “극수지래지(極數知來之)” 즉 수리를 극진히 하여 미래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지”는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그런 “앎”이 아니다. “지숭예비(知崇禮卑)”, 지혜는 높이는 것이고 예법은 낮추는 것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과 행위는 삼가야(愼) 한다. 스스로 아직 알지 못한다고 낮추면서도 계속해서 새롭게 알고자 하는 것,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日新)이 곧 덕을 이루는 일(成德)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겸손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탐구를 끝내는 것이야말로 믿지 않는 것이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면밀하게 사물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의미를 길어내는 방법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삶을 대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매일 익숙한 일을 반복하지만, 반복이 곧 무의미인 것은 아니다. 일을 반복하면서도 그간 더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일이야말로, 직업을 대하는 윤리일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주변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다. 누구든 이 책을 읽는다면,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면서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에 변화가 생기리라 믿는다.

그 외에 얻게 된 소소한 소득도 있다. ‘착종하다’라는 말에서 착종(錯綜)의 표현이 계사전 상편에 나오는 “참오이변 착종기수(셋과 다섯으로 변화시키고, 그 수를 섞어 드디어는 천지의 법칙을 이룬다)”는 부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치권에서 흔히 쓰이는 잠룡(潛龍)이라는 말은 경문에서 첫 장, 건괘를 설명하는 부분에 나온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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