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것은 어렵습니다.
오늘 아침 아주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어떤 이가 대화 중 “아무리 이완용을 욕해도, 누구나 내심 유관순으로 어린 나이에 죽는 것보단 이완용으로 살며 장수하는 걸 원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내게 말했다. 그는 이 언명이 가진 냉정한 진실성에 자신이 있는 듯 득의만만한 표정이었다. 너도 마찬가지일 거다, 라는 믿음도 읽혔다.
(과학과사람들 대표 원종우 님의 글)
이 말은 틀렸습니다. ‘좋음’이라는 말을 왜곡했거든요. 그도 그렇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과는 같이 살 수 없으니까요. 길 한가운데서 똥을 싸는 인간은 가르치기보다 피해가야 하듯이요.
이 사람은 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할까요? 겉모습을 폄하하고 속마음만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생각을 반쪽밖에 하지 못합니다.
부끄러움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에게만 허락됩니다. 우리가 흔히 ‘안하무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태양왕 루이 14세는 수많은 신하 앞에서 대변을 봤다고 하지요?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절대군주이거나 인간이 아닌 존재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삶이 얼마나 어렵고 귀한 것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마치 상품 진열대에서 고를 수 있다는 듯이 여깁니다. 삶은 선택 한 번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평생에 걸친 선택의 총합이 그의 삶이니까요. 한 사람의 삶은 선택들의 총합 그 이상의 것입니다.
“각각의 것과 관련된 활동들이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니." ... "품성상태들은 유사한 활동들로부터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3.1114a7; 2.1103b21.)
인간은 자기가 행해온 대로 삽니다. 행위들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게 무슨 뜻이냐, 습관이 든다는 겁니다. 선택과 삶을 매개하는 것은 바로 습관입니다. 이 습관 때문에, 인간은 새로운 상황을 마주해도 과거에 선택해온 대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인간은 때때로 그런 습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습관을 벗어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습관은 마치 강요하는 타인이나 나를 옥죄는 사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습관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은 습관이 본성을 닮았기 때문이다." ... “인간이 행위의 원리(시작)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7.1152a30; 3.1112b33.)
습관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자유입니다. 습관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만든 것이거든요. 습관은 내가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지만,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습관은 분명 내가 만든 것인데, 마치 날 때부터 물려받은 것처럼 나를 제약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나쁜 짓을 했을 때 숨기려 듭니다. 책임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꼼짝없이 들켰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요.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습관에 의해서 별수없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은 혼나야 합니다. 습관은 결국 당신이 만든 것이니까요.
“악은 자발적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3.1113b15.)
행위와 삶, 그 사이의 습관이 이루는 순환고리는 인간을 책임지는 존재로 만듭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애초에 악행을 시작했다는 것부터 문제가 됩니다. 아무리 핑계를 대려 해도 인간은 악행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최악의 인간은 부끄러움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그런 사람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송두리째 부정합니다. 오늘 아침 그 글을 다시 볼까요?
“아무리 이완용을 욕해도, 누구나 내심 유관순으로 어린 나이에 죽는 것보단 이완용으로 살며 장수하는 걸 원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삶이 꼭 나쁜 것이냐를 묻는 것은, 똥도 된장과 비슷한데 왜 못 먹냐고 묻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먹어 봐’라는 말뿐입니다. 그러니 알려주기보다는 피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성이 시작이며 끝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6.1143b12..)
인간의 삶은 하나의 순환고리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곧장 끊어져 버리는 그런 순환고리 말입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것은 순환고리뿐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그런 특징을 아는 자가 지성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지성이 없는 사람은 인간의 행위와 삶이 형성하는 순환고리부터 부정합니다.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다는 듯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삶이라는 문제는 그 앞에서 언제나 양자택일로 단순화하고 평탄화됩니다. 그 결과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신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행위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우리 인간은 살아온 성격대로 활동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살아온 성격과는 전혀 다른 행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행위가 인간을 빚지만 인간은 언제든 새로운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철학 고전 읽고 삶의 순환고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