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하기는 연기하기입니다.
잘 생각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를 들어 등굣길에 학교에 갈지 말지 고민한다고 해봅시다. 생각을 잘하는 사람은 두 가지를 떠올립니다. 몇 시간 뒤 학교에 간 자기 모습과 가지 않은 자기 모습을요.
오직 한 가지만 떠올린다면, 그러니까 학교에 가지 않은 자기 모습만 떠올리고 다른 모습은 전혀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건 생각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생각은 모순되는 나의 두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면서, 그 둘이 서로 논쟁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생각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어서, 생각하기는 일종의 연기하기처럼 보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가능한 최고의 논변을 스스로 해내야 하니까요. 내가 어느 한 쪽을 믿더라도 반대쪽 모습을 연기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무리 학교에 가기 싫어도,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열심히 떠올려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연기자는 어느 배역이든 소화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자네들이 불의를 옹호하여 그처럼 훌륭하게 말할 수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불의가 정의보다도 더 낫다고 믿도록 설복당하지는 않고 있다면, 자네들에겐 아주 비범한 일이 일어난 셈이기 때문일세. 내가 보기에 자네들은 정말로 전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지는 않으이.”
(플라톤, 『국가』, 2.368a.)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라는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 둘은 소크라테스를 아주 신뢰하지만,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답변하기 곤란할 만큼 열렬한 비판자의 모습을 연기합니다. 우리가 연습해야 할 생각의 기술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철학 고전 읽고 조용한 연기자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