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위는 관찰자를 전제합니다.
유명인들의 봉사활동 사진을 보면 우스울 때가 많습니다. 수많은 기자들과 무리를 우르르 이끌고 다니는데, 봉사를 하러 간 건지 사진을 찍으러 간 건지 헷갈리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알려지지 않으면 칭찬할 수 없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했다는 소시민이나 일생에 걸쳐 봉사하며 살았다는 사람들도 어쨌거나 알려졌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니까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오복음서』, 6:2-4)
행위는 늘 관찰자를 전제합니다. 관찰자가 누구냐에 따라 도덕과 윤리가 달라지겠지요. 모든 사람들을 관찰자로 두는 경우를 도덕, 오직 자기 자신이나 신만을 관찰자로 두는 경우를 윤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만 염두에 두는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철학 고전 읽고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