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사랑하려면 신격화를 경계합시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라는 말이 있지요.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당신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결코 없다고, 오직 당신뿐이라고, 그렇게 표현하고는 싶은데 가진 말이 마땅치 않을 때 쓰는 말입니다.
플라톤은 그럴 때 ‘신’이라는 개념을 빌려서 말합니다. 신은 가장 좋은 것의 원인이라고요. 가장 좋은 것보다 한 발짝 더 좋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가 신인 것이지요. 그러니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라는 말은 ‘당신은 내게 신이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사랑을 신과 연결지었을까요? 사랑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을 봅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그럼 대체 뭔가요?“
”앞에서도 내가 말했던 것처럼 죽을 자와 죽지 않을 자 사이의 것이지요.“
”그래, 그게 뭔데요, 디오티마 님?“
”위대한 다이몬이지요, 소크라테스. 기실 신령한 것은 다 신과 죽을 자 사이에 있으니까요.“
…
“그래서 에로스는 아예 방도가 없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고, 또 지혜와 무지의 사이에 있습니다.“
(플라톤, 『향연』 202e-204a)
사랑은 신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어떤 것입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가장 좋은 것보다 한 발짝 더 좋지만, 그렇다고 신이 보기에도 가장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게 바로 다이몬입니다.
그러니 좋은 사랑이란 나의 한계에 안주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신격화를 경계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인간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원동력인 것이지요.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일이라지요?
철학 고전 함께 읽고 좋은 사람으로 거듭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