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용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가? 그리고 또 이와 같은 정치 체제는 어떤 것인가? 실은 이와 같은 사람이 민주정을 닮은 사람으로 드러날 것이 명백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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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첫째로, 이들은 자유로우며, 이 나라는 자유와 막말로 가득 차 있어서, 이 나라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멋대로 할 수 있는 방종이 있지 않겠는가? (8.557b)
2. 민주정의 에토스
<국가>의 주요 테마가 “인간과 나라는 닮았다”라는 것 기억 나시나요? 플라톤에 따르면, 민주정을 닮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꽃으로 꾸민 옷’처럼 아름다워 보이지만 속은 썩을 대로 썩은 사람, 그와 닮은 정치체제가 바로 민주정입니다. 플라톤은 그 특징을 ‘자유’, ‘막말’, ‘방종’으로 듭니다.
3. 자유와 소크라테스의 죽음
<국가>의 민주정에서 ‘자유’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좋은 자유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를 의미하는 엘레우테리아(ἐλευθερία)는 고대 아테네에서 노예가 아닌 사람의 자격을 의미했습니다. 자유민만이 광장에서 연설도 하고, 중요한 안건에 투표도 하는 참정권을 가졌지요.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바로 그 투표 때문에 죽었습니다.
4. 무질서한 자유
그러니 플라톤은 이렇게 묻는 것이지요. “질서 없는 자유가 자유냐?” 소크라테스는 동료 시민들의 판단이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에게 배우려 했고요.
그러나 대중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나타나도, 배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판단을 밀고 나갑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래서 죽었습니다. 플라톤은 이런 모습을 무질서하다는 뜻의 아노모스(ἄνομος)라 부릅니다.
5. 막말: 동굴 속의 사람들
제가 막말로 옮긴 파레시아(παρρησία)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파레시아는 누군가 잘못했을 때 자기 안위를 개의치 않고 모두 다 말하는 모습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왕이 잘못했을 때 간언하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플라톤이 보기에 민주정에서는 그런 파레시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는’ 모습이 파레시아의 겉모습을 띱니다. 밖에서 실물을 보고 돌아온 사람에게 동굴 속의 사람들이 그림자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하던 것처럼요.
6. 방종: 무한한 악행
무질서한 자유와 막말, 이 두 가지의 조합은 방종뿐입니다. 방종은 그리스어로 엑수시아(ἐξουσία)라고 하는데, 한도가 없는 무한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간은 다른 인간이라는 한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지금 아무리 무엇을 하고 싶어도, 다른 사람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지요. 엑수시아는 그런 모든 한계를 무시하는 행동에서 나타나는 악덕입니다.
7. 기게스의 반지
플라톤은 엑수시아를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는 기게스의 반지 신화로 설명합니다. 이 신화는 모습을 숨겨주는 마법 반지를 꼈을 때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그립니다. 다른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진 기게스는 왕비를 겁탈하고 왕위를 찬탈합니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지요.
자유, 막말, 방종… 플라톤은 이런 모습이 민주정에서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8. 민주주의를 거부한 플라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거부했을까요? 모든 사람을 누군가의 노예 상태로 두어야 한다는 게 플라톤의 의견이었을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철학자, 수호자, 생산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민주주의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바로 ‘자기 주제를 아는 일’을 통해서요.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검토하는 일, 즉 철학밖에 길이 없습니다.
9. 우리의 정치를 낫게 하려면…
좋은 민주정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들만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말을 해도 되는지, 나의 투표권을 올바로 사용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검토해야 합니다. ‘철학이 없다’는 비판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유권자인 우리 스스로에게도 겨냥해야 하는 말이니까요.
요즘 선거로 시끌시끌합니다. 모두들 <국가>를 한번쯤은 읽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