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리에르, 『타르튀프』, 신은영 역, 열린책들, 2012.
Molière, Le Tartuffe, Gallimard, 1664/1997.
이름에 관하여
타르튀프의 프랑스어 제목은 Le Tartuffe ou L’imposteur(타르튀프 혹은 사기꾼)이다.
이탈리아어 타르투포(tartufo)는 송로버섯을 의미한다. 땅의 혹(terrae tuber)이라는 라틴어에서 왔다. 타르투포는 위선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위선과 송로버섯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탈리아인은 송로버섯이 위선이라는 악덕을 단적으로 상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송로버섯은 땅속에서 자란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캐기 위해서는 개의 도움을 받는다. 개는 땅에서 냄새를 맡아 송로를 찾는다. 땅속에서 갓 캔 송로버섯을 보면 그야말로 개똥과 유사하다. 너무나 못생겼다. 그런데 버섯을 갈라보면 두뇌 모양의 아름다운 문양과 함께 진한 향이 퍼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 향을 좋아해 높은 값을 치르고 송로버섯을 산다. 반면, 같은 버섯이어도 정반대인 독버섯을 보자. 알록달록 아름답게 생겼으나 먹으면 죽는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진짜 가치는 속에 있다는 것, 특히 그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것, 이 세 가지가 송로버섯과 위선 사이의 연관점이다.
송로버섯의 프랑스어는 트뤼플(truffe)이다. 왜 몰리에르는 굳이 이탈리아어를 썼을까? 희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다. 몰리에르는 당대 유명했던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양식을 프랑스적으로 해석한 인물이었다.(?) 콤메디아 델라르테는 가면 쓴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농담을 던지며 연기하는 이탈리아식 희극이다. 송로버섯을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
도린. 진실을 드러내는 분별.
오르공. 무지, 무분별, 진실을 가리는 분노.
엘미르. 비밀을 지키는 분별.
미다스. 진실을 드러내는 분노.
클레앙트. 관찰자. 판단자. 사교성의 수호자.
서문 위선자들의 경건한 욕설
성직자들의 태도가 지적된다. 「타르튀프」와 「은둔자 스카라무슈」가 똑같이 종교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타르튀프」는 공연이 금지된 반면, 「은둔자 스카라무슈」는 그렇지 않았다. 이에 대해 콩데 공(Louis II de Bourbon, Prince of Condé, 1621~1686)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이유야 이렇지요. 희극 <스카라무슈>는 신과 종교를 다루고 있는데, 저 양반들은 거기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거든요. 하지만 몰리에르의 희극은 바로 저 양반들 자신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견디질 못하는 겁니다.”
성직자는 신과 종교를 그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지켜야 할 사람들인데도, <스카라무슈>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과 종교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타르튀프>에 대해서 성직자들이 극렬히 반대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타르튀프’의 현현이라 볼 수 있다.
...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신의 뜻을 덮어씌웠다. 그들 말에 따르면 「타르튀프」는 신성을 모독하는 작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불경한 언동으로 가득 차 있으며, 화형을 면할 만한 점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음절 하나하나가 모두 불경하고 몸짓들까지도 사악해서 사소한 시선, 고갯짓, 좌우로 내미는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무언가 숨겨진 의미가 있다며 그것을 어떻게든 내게 불리한 식으로 설명했다. 내 지인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모든 사람들이 검증을 해도, 내가 수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작품을 보신 국왕 폐하와 왕비마마의 판단, 영광스럽게도 공연을 관람하신 대귀족들과 대신들의 칭찬, 이 작품이 유익하다고 느끼신 선량한 이들의 증언 또한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은 한번 입에 문 것을 놓으려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매일 경솔한 열성 신도들을 동원하여 소란을 떨었다. 그 신도들은 나를 향해 경건한 태도로 욕설을 퍼부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저주를 해댔다.
10쪽.
무엇보다 나는 진정한 독신자(篤信者)들에게 내 작품의 구성에 대해 변론하고 싶다. 내가 진심으로 간청하는 것은 극을 보기도 전에 비난하지 마시라는 것, 모든 선입견을 버리시라는 것, 그리고 위선적인 표정으로 진정한 독신자들의 명예에 누를 끼칠 수 있는 자들의 열정에 봉사하지 마시라는 것이다.
11쪽.
사람들의 악덕을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도록 드러내 놓을 때 그 악덕은 큰 타격을 입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비난을 쉽게 감내하지만 조롱에는 그러지 못한다. 못된 사람이 될지언정 결코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13쪽.
제1막
제1장
오르공의 어머니 페르넬 부인이 타르튀프에 매혹된 장면이다. 가족과 사돈, 하녀 도린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참주정체 같은 인간은 가족보다 친구의 말을 더 믿는다던 <국가>의 구절이 생각난다.
제2장
오르공의 처남 클레앙트와 하녀 도린의 대화 장면이다. 도린의 입으로 타르튀프의 위선적인 성품과 타르튀프에 빠진 오르공의 모습이 서술된다.
제3장
마리안과 발레르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관계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다미스의 입으로 서술되는 장면이 흥미롭다. 이에 대한 타르튀프의 입장과 오르공의 입장이 서술된다.
제4장 두 가지 에토스
오르공이 등장한다. 도린의 입으로 오르공의 아내 엘미르와 타르튀프의 대조적인 상황이 서술된다. 오르공이 아내에 관한 나쁜 정보에는 “Et Tartuffe?(그래, 타르튀프 공은?)”, 타르튀프에 관한 좋은 정보에는 “Le pauvre homme!(가엾은 분 같으니!)”라는 반응을 네 번 반복하는 점이 우스꽝스럽다. 여기서 ‘말이 되는 말’을 하는 자는 유일하게 도린이다. “주인님께서 마님의 회복에 얼마나 마음을 쓰시는지 알려드리죠.”라는 도린의 대사는 에이로네이아를 통한 비꼬기이다.
오르공이 엘미르와 타르튀프에게서 찾으려는 것은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보습’, 즉 파토스적 에토스이다. 반면, 도린이 오르공에게서 찾으려는 것은 ‘말이 되는 말을 하는 모습’, 즉 로고스적 에토스이다.
제5장 무지와 언어, 분별을 관찰하는 자
처남 클레앙트와 오르공의 대화. 도린의 비웃음이 당연하다고 한다. 오르공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C'est un homme...qui...ha!...un homme...un homme enfin.
오르공이 타르튀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딱히 이유가 있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 모든 믿음이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믿음이 감정의 영역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르공은 가족의 죽음에 따른 애도 같은 감정마저도 느끼지 않으리라 말한다. 타르튀프에게 호감을 갖게 된 이유는 모두 오르공에게 ‘그렇게 보여서’이다.
아! 내가 그분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안다면 / 자네도 나만큼이나 호감을 갖게 될 거야. / 그분은 매일같이 교회에 와서 바로 내 앞에 / 가만히 무릎을 꿇곤 하셨지. /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드리던지 / 회중의 눈길을 한 몸에 받곤 하셨지.
37쪽.
기도하는 꼬마들 중에 “선생님 얘 기도 안 해요!”라고 고발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δὲ Προσέχετε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ὑμῶν μὴ ποιεῖν ἔμπροσθεν τῶν ἀνθρώπων πρὸς τὸ θεαθῆναι αὐτοῖς· δὲ εἰ μή γε, μισθὸν οὐκ ἔχετε παρὰ τῷ πατρὶ ὑμῶν τῷ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οὖν Ὅταν ποιῇς ἐλεημοσύνην, μὴ σαλπίσῃς ἔμπροσθέν σου, ὥσπερ οἱ ὑποκριταὶ ποιοῦσιν ἐν ταῖς συναγωγαῖς καὶ ἐν ταῖς ῥύμαις, ὅπως δοξασθῶσιν ὑπὸ τῶν ἀνθρώπω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ἀπέχουσιν τὸν μισθὸν αὐτῶν.
δὲ σοῦ ποιοῦντος ἐλεημοσύνην μὴ γνώτω ἡ ἀριστερά σου τί ποιεῖ ἡ δεξιά σου,
ὅπως ᾖ σου ἡ ἐλεημοσύνη ἐν τῷ κρυπτῷ· καὶ ὁ πατήρ σου ὁ βλέπων ἐν τῷ κρυπτῷ ἀποδώσει σοι.
Καὶ ὅταν προσεύχησθε, οὐκ ἔσεσθε ὡς οἱ ὑποκριταί· ὅτι φιλοῦσιν ἐν ταῖς συναγωγαῖς καὶ ἐν ταῖς γωνίαις τῶν πλατειῶν ἑστῶτες προσεύχεσθαι, ὅπως φανῶσιν τοῖς ἀνθρώποις·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ἀπέχουσι τὸν μισθὸν αὐτῶν.
δὲ ὅταν σὺ προσεύχῃ, εἴσελθε εἰς τὸ ταμεῖόν σου καὶ κλείσας τὴν θύραν σου πρόσευξαι τῷ πατρί σου τῷ ἐν τῷ κρυπτῷ· καὶ ὁ πατήρ σου ὁ βλέπων ἐν τῷ κρυπτῷ ἀποδώσει σοι.
δὲ Προσευχόμενοι μὴ βατταλογήσητε ὥσπερ οἱ ἐθνικοί, γὰρ δοκοῦσιν ὅτι ἐν τῇ πολυλογίᾳ αὐτῶν εἰσακουσθήσονται·
οὖν μὴ ὁμοιωθῆτε αὐτοῖς, γὰρ οἶδεν ὁ πατὴρ ὑμῶν ὧν χρείαν ἔχετε πρὸ τοῦ ὑμᾶς αἰτῆσαι αὐτόν.
6:1 Take heed that ye do not your alms before men, to be seen of them: otherwise ye have no reward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6:2 Therefore when thou doest thine alms, do not sound a trumpet before thee, as the hypocrites do in the synagogues and in the streets, that they may have glory of men. Verily I say unto you, They have their reward.
6:3 But when thou doest alms, let not thy left hand know what thy right hand doeth:
6:4 That thine alms may be in secret: and thy Father which seeth in secret himself shall reward thee openly.
6:5 And when thou prayest, thou shalt not be as the hypocrites are: for they love to pray standing in the synagogues and in the corners of the streets, that they may be seen of men. Verily I say unto you, They have their reward.
6:6 But thou, when thou prayest, enter into thy closet, and when thou hast shut thy door, pray to thy Father which is in secret; and thy Father which seeth in secret shall reward thee openly.
6:7 But when ye pray, use not vain repetitions, as the heathen do: for they think that they shall be heard for their much speaking.
6:8 Be not ye therefore like unto them: for your Father knoweth what things ye have need of, before ye ask him.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비판하는 클레앙트에게 오르공은 “libertinage(무신앙)”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클레앙트는 오르공의 눈이 멀었다고 비판한다. 비판할 능력이 있고 숭배를 그치면 무신앙이냐고 반문한다.
그러니까 뭔가요? / 위선(hypocrisie)과 신심(dévotion)을 전혀 구별하지 않으실 건가요? / 매형은 그 둘을 똑같이 취급하고 싶으신 건가요? / 진짜 얼굴(visage)과 가면(masque)에 똑같이 경의를 표하고 / 가식적인 것(artifice)과 진실한 것(sincérité)을 똑같이 취급하며 / 외양(apparence)을 진실(vérité)로 혼동하고 / 유령(fantôme)을 진짜 사람(personne)과 똑같이 존중하며 / 가짜 돈(fausse monnaie)이 진짜 돈과 같다고 하시는 거냐고요!
39쪽
인간이 진리를 아냐는 오르공의 조소에 클레앙트는 “제가 가진 온갖 지식을 동원하여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결과로 드러나는 것은 “허울뿐인 믿음을 가식적으로 드러내는 자들, 순 사기꾼들, 신앙심을 과시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오히려 “진정으로 신심 깊은 분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그분들은 절대 자신들 미덕을 요란스레 과시하지 않아요. / 도저히 참아 줄 수 없는 오만함 같은 건 눈 씻고 봐도 없죠. / 그분들의 신앙은 인간적이며 온건하답니다. / 우리의 행실이 전부 잘못됐다 비난하지도 않아요. / 행실을 고치겠다는 훈계 자체가 지나친 오만이라는 거죠. / 도도하게 말로 훈계하는 건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고 / 몸소 실천함으로써 우리 행동을 바로잡아 주신답니다. / 구분들은 그저 외양만 보고 악하다고 판단하지 않아요. / 남들을 좋게 봐주려는 심성을 지니고 계시니까요. / 그분들은 파당을 짓지도, 음모에 휩쓸리지도 않아요. / 그저 바르게 살려고 애를 쓸 따름이지요. / 누가 죄를 지었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법도 없고 / 그저 죄만을 미워할 뿐이에요. / 그리고 지나친 신심으로 하늘이 원하는 것 이상 / 그 뜻을 받들려 하지도 않지요. / 제가 인정하는 분, / 신심을 어찌 써야 할지 아는 분들은 이런 분들이에요. /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은 결국 이런 분들이란 말입니다.
42쪽.
클레앙트는 오르공이 마리안과 발레르의 결혼 약속을 지킬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오르공은 그저 약속을 어기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뿐이라며, 무슨 생각인지 묻는 질문에는 “하늘의 뜻”이라고 한다.
제2막
제1장
오르공과 마리안의 대화. 타르튀프와 마리안을 결혼시키고 싶어 한다.
제2장 무지와 에이로네이아
엿듣고 있던 도린의 등장. 오르공은 타르튀프가 가진 게 없다면서도 재산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 말한다. 도린은 모순을 지적한다.
오르공
발레르에게 너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은 했다만 / 그 녀석이 도박을 좋아한다는 말이 들리는 데다가 / 신앙심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거든. / 그 녀석이 교회에 오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다.
도린
오로지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교회에 가는 자들처럼 / 발레르도 주인님 가시는 시간에 딱 맞춰 가라는 건가요?
도린은 오르공의 화를 돋운다. 오르공 퇴장.
제3장 분별과 에이로네이아
도린과 마리안의 대화.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선과 마찬가지로 언어에 담을 수 없음이 드러난다. 마리안은 “아버지의 뜻을 대놓고 거스르고 무시하”는 것과 “여자로서의 정숙함과 딸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양자를 결정짓는 핵심은 “내 사랑이 만천하에 알려”지는 것이다. 마리안은 운명에 순응해 죽음을 고민한다. 도린은 에이로네이아를 통해 마리안을 일깨우려 한다.
마리안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대놓고 거스르고 무시하면서 / 내 마음이 완전히 발레르 쪽으로 쏠려 있음을 보여야 할까? /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기로서니 그분을 위해 / 여자로서의 정숙함과 딸로서의 의무를 저버려야 할까? / 네가 원하는 게 그거야? 내 사랑이 만천하에 알려져서—
도린
아니, 아니에요. 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이제 알겠네요. / 아가씨는 타르튀프와 결혼하고 싶은 거예요. / 그런 결혼을 말리려 들다니, 제가 잘못할 뻔했네요. / 아가씨가 원하는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66쪽.
도린은 계속해서 타르튀프의 좋은 점을 열거한다. 마리안은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 도린의 에이로네이아는 그제서야 종료된다.
제4장 사랑과 에이로네이아
발레르와 마리안의 대화. 타르튀프와 마리안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발레르. 사랑싸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서로의 마음을 숨기는 편이 미덕이다. 구애를 거절당했을 때의 비참함을 피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랑하는 자로부터 확인받길 원한다. 좋아하면서도 서로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랑만큼 위선적인 게 어디 있는가? 비꼼과 사랑은 에이로네이아를 기초한다.
발레르
뭐라고요? 진심으로 그러셨단 말인가요?
마리안
네, 진심으로요. / 그 결혼을 원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발레르
그렇다면 / 당신 마음은 어떤가요?
마리안
모르겠어요.
발레르
솔직한 대답이군요. / 모르겠다고요?
마리안
그래요.
71쪽.
도린의 중재. 마리안과 발레르의 속마음을 공개하고 보증한다. 속마음에 대한 믿음은 제삼자의 보증이 없으면 형성되지 않는다.
도린
두 분 다 어리석으시네요. 아가씨는 오직 / 도련님께 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으세요, 제가 보증해요. / 도련님도 아가씨만을 사랑하고 아가씨 남편이 되고 싶은 / 그런 생각밖에 없다고요. 제 목숨을 걸고 보증하죠.
…
솔직히 말해볼까요? 연인들은 다 미쳤어요!
81-2쪽.
오르공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도린은 비밀 작전을 세운다. 마리안은 타르튀프와의 결혼을 계속해서 미루고 다미스와 엘미르를 포섭하고자 시도하고, 발레르는 친구들을 동원해 오르공이 약속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사는 여러 사람이 같은 주장을 해야 사건의 원인이 된다는, 정치적 권력의 모습이다.
도린
… 그래도 일이 잘되게 하려면 제 생각엔 / 이렇게 두 분이 같이 있는 걸 들키지 않는 게 좋겠어요.
84쪽.
제3막
제1장 분별과 분노
다미스와 도린의 대화. 분노한 다미스. 타르튀프가 엘미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자는 도린. 분노는 진실을 드러내는 성질을 갖는다. 도린은 다혈질 다미스가 빠지도록 요구한다.
제2장 위선의 언어
도린의 존재를 의식하는 타르튀프와 그렇지 않은 로랑의 대화. 타르튀프는 자신의 속마음을 계속해서 가장해 드러낸다.
타르튀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아! 제발 부탁이니 / 이 손수건부터 받고 말하시게.
도린
뭐라고요?
타르튀프
내 차마 그 가슴을 볼 수 없으니 가려 주시게. / 그런 것들로 인해 영혼이 상처를 받고 / 죄가 될 생각을 떠올리게 되니까.
89쪽.
제3장 위선자의 고백
엘미르와 타르튀프의 대화. 엘미르는 계속해서 타르튀프가 “trop지나치다”고 말한다. 엘미르는 마리안과 발레르의 혼사에 대해 말하는데 타르튀프는 계속해서 엘미르에게 추파를 던진다. “완벽한 피조물이신 부인을 볼 때마다 / 저는 자연의 창조주를 찬미하지 않을 수 없고”라는 부분에서 몰리에르는 자연신학을 염두에 뒀다. “béatitude지복”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함으로써 영원에 어울리는 단어를 시간 속의 사랑에 썼다며 몰리에르는 당대 성직자를 비판한다.
위선자의 에토스. 다른 위선자를 비판한다.
타르튀프
여자들이 죽고 못 사는 저 궁정의 한량들은 하나같이 / 행실만 요란할 뿐 말은 헛된 자들입니다. / 여자들을 이 정도까지 꼬였노라 사방에 자랑이나 해대고 / 누가 자기에게 마음을 주었는지 있는 대로 떠벌려 대지요. / 자기들을 믿고 털어놓은 것을 경솔하게 떠들어 대니 / 자기들이 마음을 바친 제단을 더럽히는 거나 다름없어요. /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져도 신중하기에 / 우리와 함께라면 언제까지나 비밀을 보장할 수 있지요. / 우리는 평판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지켜 준답니다.(Le soin que nous prenons de notre renommée / Répond de toute chose à la personne aimée,)
98쪽.
discrétion신중함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모습. 타르튀프는 불법한 사랑을 비밀로 하자고, 엘미르는 타르튀프의 위신을 생각해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한다. 어쨌거나 거짓말은 분별력을 가진 자의 능력이다.
타르튀프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져도 신중하기에 / 우리와 함께라면 언제까지나 비밀을 보장할 수 있지요.(Mais les gens comme nous brûlent d'un feu discret, / Avec qui pour toujours on est sûr du secret:)
…
엘미르
하지만 저는 신중하게 처신하려고 합니다. / 남편에게는 이 일을 함구하도록 하지요.(Mais ma discrétion se veut faire paraître. / Je ne redirai point l'affaire à mon époux;)
98-99쪽.
제4장 분노와 진실 1
분노한 다미스 등장. 분별력 없는 분노는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내려고 한다. “plus sage좀 더 현명”해지면 비밀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다미스
아니, 어머니, 안 돼요. 이 일을 모두에게 알려야 해요. / 제가 저기서 다 들었습니다. / 하느님의 은총이 저를 이리로 인도해주신 것 같네요. / 저를 음해하던 저 사기꾼의 콧대를 꺾어놓고 / 저 위선고 뻔뻔함에 복수할 길을 열어주려고 말입니다. …(Non, Madame, non: ceci doit se répandre. / J'étais en cet endroit, d'où j'ai pu tout entendre; / Et la bonté du Ciel m'y semble avoir conduit / Pour confondre l'orgueil d'un traître qui me noit, / Pour m'ouvrir une voie à prendre la vengeance / De son hypocrisie et de son insolence, …)
엘미르
아니다, 다미스. 이분이 좀 더 분별력을 갖고 / 내 호의에 보답해 주시기만 한다면 그걸로 된 거야.(Non, Damis: il suffit qu'il se rende plus sage, / Et tâche à mériter la grâce où je m'engage.)
100쪽.
하지만 다미스는 엘미르의 만류를 뿌리친다. 복수할 수 있는 기쁨 때문이다.
다미스
아뇨, 어머니, 저는 제 생각을 따라야겠습니다. / 지금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 이리 복수할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할 순 없다고요. …(Non, s'il vous plaît, il faut que je me croie. / Mon âme est maintenant au comble de sa joie; / Et vos discours en vain prétendaent m'obliger / à quitter le plaisir de me pouvoir venger.)
101쪽.
제5장 분노와 진실 2
오르공의 등장. 다미스의 폭로.
다미스
… 어머니는 마음이 고우시고 사려가 깊으셔서 / 어떻게든 이 일을 비밀에 부치고자 하셨지만 / 저는 이 파렴치한 일을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 이 일을 숨기는 건 아버지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했습니다.
엘미르는 믿음이 비밀 보장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엘미르
… 제 생각은 그래요. 그리고 다미스, / 네가 나를 믿었다면 아무 말 하지 않았을 텐데.
102쪽.
제6장 진실을 말하는 위선자
엘미르의 퇴장. 타르튀프의 고백.
타르튀프
그렇습니다, 형제님, 저는 악인이고 죄인입니다. / …
103쪽.
늘 거짓말을 하던 타르튀프가 이번에는 진실을 말한다. 그러자 오르공은 다른 모두가 타르튀프를 모함해 거짓말한다고 믿는다. 위선자의 에토스.
타르튀프
아! 그냥 두세요. 아드님을 나무라시는 건 옳지 않습니다. / 아드님 얘기를 믿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이런 일에 어째서 제 편을 드시는 겁니까? 어쨌건 제가 무슨 짓을 할 만한 놈인지 어찌 아십니까? / 형제님, 겉모습만 보고 절 믿으시는 건가요?(Vous fiez-vous, mon frère, à mon extérieur?) / 이 모든 걸 보고도 제가 더 나은 자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 아니요, 아닙니다. 겉모습에 속고 계신 겁니다.(Non, non: vous vous laissez tromper à l'apparence,) / 아!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 모두가 저를 선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저는 /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입니다. 그게 진실이라고요.
104쪽.
오르공의 분노. 다미스의 분노와 오르공의 분노가 격돌한다. 분노의 공통점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구를 담당하는 영혼의 부분이 로고스를 듣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오히려 다미스의 폭로가 오르공이 강제로 마리안을 타르튀프에게 결혼시키도록 만든다.
제7장
다미스를 쫓아낸 오르공. 타르튀프와의 독대. 오히려 타르튀프는 다미스를 위로한다. 고통을 호소하며 집을 나가겠다고 한다. (비밀이 폭로되어 더이상 머무르기 위험하다 판단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타르튀프를 말리는 오르공. 오히려 타르튀프가 아내를 자주 만나도록 허락해준다. 게다가 타르튀프에게 모든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제4막
제1장 위선자와 정치 혐오
타르튀프를 향한 클레앙트의 회유. 타르튀프가 다미스를 용서하고, 오르공에게 다미스를 용서하도록 말을 전해달라는 내용. 다미스와 한 공간에 머무를 수 없다는 타르튀프.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척하는 것”을 정치적이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타르튀프
… 사람들이 당장 어찌 생각할지 뻔하지 않습니까! / 저더러 완전히 정략적인 인간이라고 비난할 겁니다.(à pure politique on me l'imputerait;) / 사방에서 떠들어 대겠지요. 죄책감 때문에 /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척한다고요. / …
114쪽.
정치는 인간의 판단이라는 클레앙트. 죄를 용서하라는 신의 뜻에는 인간의 판단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과 용서를 속마음에, 용서하는 행위와 한집에 사는 것을 겉모습에 두는 타르튀프. 신의 뜻을 겉모습에도 연결지으면서 신을 참칭한다.
타르튀프
이미 말씀드렸듯이 마음으로는 그를 용서하고 있습니다. / 하느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한 거죠. / 하지만 오늘 소란 중에 그런 모욕을 당하고 나서도 / 제가 다미스와 한집에 사는 건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115쪽.
상속의 문제. 상속받은 재산을 악하게 쓰는 것이 더 나쁜가, 정당한 상속자를 물리치는 것이 더 나쁜가? 불편한 자리를 피하는 이유를 “성무를 행하러 가봐야 해서”라고 핑계대는 타르튀프. 핑계는 정당하지 않은 이유이다.
제2장
엘미르, 마리안, 클레앙트를 규합하는 도린.
제3장
오르공이 계약서를 갖고 등장한다. 마리안은 결혼을 막아달라고 간청한다.
오르공
그게 아니지. 난 보이는 그대로를 믿는 거요.
121쪽.
엘미르는 타르튀프의 위선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약속은 예언적 성격을 갖는다. 약속을 지킨 자에게는, 더군다나 약속하는 자 이외의 현상에 대해 약속하는 자에게는 신뢰가 간다.
엘미르
당신에게 한 얘기가 모두 사실이란 걸 보여 드린다면 / 의심 많은 당신은 제게 과연 뭐라고 하실까요?
오르공
보여 준다고?
엘미르
그래요.
오르공
말도 안 되는 소리.
엘미르
뭐라고요? / 제가 어떻게든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보여드린다면요?
오르공
터무니없는 소리.
엘미르
답답한 양반! 어쨌든 대답이나 해봐요. / 그냥 믿어 달라는 게 아니에요. / 자, 어떤 장소를 골라서 당신이 모든 걸 분명히 보고 들을 수 있게 해드린다면 / 당신의 그 선하신 양반에 대해 뭐라 하실 거냐고요!
오르공
그런다면야, 그러니까....... 아무 말도 안 할 거요. /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니까.
122-123쪽.
도린
교활한 인간이라서 / 아마도 꼬리를 잡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엘미르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법. / 자기애 때문에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하는 거고.
제4장
마리안, 도린, 클레앙트 퇴장. 엘미르는 오르공을 숨긴다. 은폐된 관찰자만이 진실을 볼 수 있다. 행위자는 관찰자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약속된 위선은 위선이 아니다. 그것은 연극이기 때문이다.
엘미르
... 전 이제 달콤한 말로 저 위선자의 가면을 벗기고 / 그 파렴치한 사랑의 욕망을 부추겨서 / 마음 놓고 경솔한 행동을 하게 만들 거예요. / 제가 그자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척하는 것은 오로지 / 당신을 위한 것이고, 그자의 가면을 벗기기 위한 것이니 / 당신이 납득하는 순간 저는 당연히 연극을 그만둘 거예요.
126쪽.
제5장
타르튀프의 등장, 숨어있는 오르공. 엘미르는 타르튀프를 유혹한다. 에토스 파테티코스는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엘미르
... 당신 평판 덕에 소동은 가라앉았고 / 남편은 당신을 의심할 수 없게 되었어요.
127쪽.
타르튀프라는 위선자마저도 엘미르에게는 과거의 행적과 현재의 행위를 비교해 판단한다. 엘미르를 불신하는 타르튀프. 엘미르는 명예를 중시하는(정숙을 강요하는) 분위기와 사랑이라는 감정 사이에서 여성이 취하는 위선적 태도를 이용한다.
타르튀프
지금 말씀은 정말 이해하기 힘드네요, 부인. / 조금 전에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잖아요.
엘미르
아! 그걸 거절이라 여겨 화가 나셨다면 /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모르시는 거네요! / 그렇게 알 듯 말 듯 저항할 때 / 여자가 정말 하려는 말이 뭔지 모르시는 거라고요! / 그런 순간에 늘 남자가 바치는 사랑을 거부하는 건 / 여자로서 지녀야 할 정숙함 때문이랍니다. ... 우선 거절하고 보는 거죠. 하지만 그때의 태도를 보면 / 충분히 알아챌 수 있어요. 우리 마음이 넘어갔다는 것, / 명예 때문에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한다는 것, / 그런 식의 거절은 모든 걸 약속하는 것과 같다는 걸요. ...
127-128쪽.
타르튀프는 아직 불신을 놓지 않고 말의 증거로 행위를 요구한다.
타르튀프
... 그러니 터놓고 말씀드리자면 / 부인의 달콤한 말을 저는 절대 믿지 않을 겁니다. / 제가 갈망하는 애정 표현을 조금이라도 허락하시어 / 지금 하신 말씀을 확인시켜 주시고 / 부인의 매혹적인 호의를 / 확신할 수 있게 해주시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
사랑은 말만 가지고는 확신하기 힘들어요. ... 부인께서 행동으로 제 사랑에 확신을 주지 않으시면 / 아무것도 믿지 않을 겁니다.
129-130쪽.
신이 두렵다는 엘미르. 타르튀프는 신과 타협하는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타르튀프
... 부인, 저는 양심의 가책을 없애는 기술을 알고 있답니다. / 사실 하느님이 어떤 종류의 쾌락을 금하고 계시기는 하죠. / (간악한 자로 돌변하여 말을 잇는다) / 하지만 하느님과도 타협하는 수가 있어요. / 필요에 따라 / 양심의 끈을 느슨하게 하고 / 악행을 의도의 순수성으로 / 수정하는 기술이 있답니다. ...
...
어쨌든 양심의 가책을 없애는 건 쉬운 일입니다. / 여기선 비밀이 완전히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 사람들이 떠들어 댈 때만 죄가 되는 것이지요. / 세상에서 떠들어 대야 죄가 되는 것이지 / 조용히 저지르는 건 죄가 아니에요.
131-132쪽.
엘미르가 선을 넘기 직전이다. 남편 오르공과 타르튀프 모두를 향해 엘미르는 동시에 말한다. 계속된 불신과 증거를 요구하는 태도는 상대방을 범죄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엘미르
... 이 선을 넘어서는 건 분명 제 뜻이 아니에요. / 하지만 제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다 / 제가 하는 말은 하나도 믿으려 들지 않으시고 /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원하시니 / 어쩔 수가 없네요. 만족시켜 드릴 수밖에요. / 이렇게 허락하는 것이 죄가 된다면 / 이럴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에겐 안된 일이지요. / 분명 제 잘못은 아니라고요.
133쪽.
하지만 오르공은 그래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타르튀프가 오르공을 비하하는 말, 즉 오르공이 보면서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할 때에야 비로소 오르공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
타르튀프
그 양반한테 신경 쓸 필요나 있나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 제가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인데요. / 우리가 만나는 걸 그는 영광으로 여기는걸요. / 그가 뭘 보더라도 전혀 믿지 않게끔 해놨다니까요.
134쪽.
제6장
타르튀프는 문밖을 확인하러 나가고, 탁자 밑에서 오르공이 등장한다. 오르공은 무지에서 깨어났음을 엘미르에게 분노로 드러낸다.
제7장
타르튀프의 복귀. 오르공의 비난. 타르튀프에게 집에서 나가라는 오르공, 하지만 주인이 바뀌었음을 공개하는 타르튀프.
제8장
타르튀프에게 재산상속을 약속했음을 드러낸 오르공. 상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제5막
제1장
상자를 찾으려 분주한 오르공. 친구의 생사가 달린 문서가 담긴 상자를 오르공은 타르튀프에게 맡겼다. 그 이유는 양심 때문이었다.
클레앙트
그런데 그걸 왜 다른 사람 손에 맡기신 거죠?
오르공
그건 종교적인 양심의 문제 때문이었네. / 내 그 사기꾼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다 털어놓았지 뭔가. / 그 상자를 차라리 자기에게 맡기라는 / 그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지. / 혹시 조사를 받게 되더라도 / 내 수중에 없다고 발뺌할 좋은 구실이 될 거고, / 그렇게 되면 진실에 반하는 맹세를 하더라도 / 양심에 거리끼진 않을 테니까.
140쪽.
클레앙트는 오르공에게 이중의 경솔함을 지적한다. 조심스러움은 (1) 미지의 상대에게 어느 정도까지 행위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2) 상대방과 나의 관계에서 일어날 결과는 어떤 것인가를 헤아리는 능력이다.
클레앙트
... 재산 상속에다가 그런 비밀까지 털어놓으신 건 / 너무 경솔하셨던 것 같아요. / 그런 약점을 잡았으니 매형을 더 물고 늘어질 수도 있어요. / 그 정도로 유리한 입장에 있는 그자를 몰아붙인 건 / 더더욱 경솔한 짓이었고요. / 더 조심스럽게 하셨어야 했는데.
141쪽.
오르공은 이제 모든 선을 혐오하겠다고 선언한다. 탓해야 할 것은 위선과 진실된 선을 분별하지 못한 자신의 무분별인데, 선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탓하는 것이다. 클레앙트는 이 점을 비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 정당을 덮어놓고 뽑아주는 여러 지역을 떠올렸다. 그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 혹은 정당에 배신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맥락에서 그런 지지자는 자신의 무지와 무분별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치인 일반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아 넘어갔던 말, 즉 바람직한 말을 하는 자를 더욱 미워하는 것이다.
오르공
뭐라고? 신앙심에 불타는 그 감동적인 겉모습 뒤에 / 그런 이중인격과 사악한 영혼을 감추고 있을 줄이야! / 무일품에 구걸이나 하던 그자를 받아 준 나는 ....... / 이제 됐네, 그런 자들은 더 받아주지 않을 거야. / 이젠 지독히 미워할 거라고. / 그런 놈들한텐 악마보다 더 끔찍하게 굴 거란 말일세.
클레앙트
저런! 그렇게 흥분하시면 안 되죠! / 매형은 매사에 침착하질 못하세요. / 올바르게 이치를 따져 생각하는 법이 없고 / 늘 극에서 극으로 치달으신단 말이에요. / 매형은 이제야 거짓 신앙에 속아 왔다는 걸 아셨어요. /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게 되신 거죠. / 하지만 그 잘못을 고치자고 / 더 큰 잘못을 저지르셔서야 되겠어요? / 그 못된 불한당 놈의 마음과 / 모든 선한 사람들의 마음을 혼동해서야 되겠느냐고요! / 아니, 사기꾼 하나가 아주 그럴싸하게 근엄한 표정을 하고 / 뻔뻔하게도 매형을 속였다고 해서 / 세상 모든 사람이 그자와 같고 / 진짜 독실한 신자는 한 사람도 없다 하시려고요? / 그리 어리석은 결론일랑 무신앙가들 몫으로 남겨 두세요. / 겉으로만 그럴싸한 미덕과 진짜 미덕을 구분하시고 / 절대 성급하게 사람을 판단하지 마시라고요. / 그러려면 중용을 지키셔야 해요. / 가능하면 협잡에 걸려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 그렇다고 진정한 신앙을 모독해서도 안 되겠지요. / 어느 한 극단에 빠져야만 한다면 / 차라리 사기를 당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141-142쪽.
제2장
이 이야기를 들은 다미스의 분노. 폭력을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제3장
페르넬 부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오르공. 끝까지 믿지 않는 페르넬 부인. 무지한 자는 자기 지식의 한계 이상의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광신에 빠진 자는 자신이 믿는 것 이상의 상황을 상상하지 못한다. 광신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증거가 있을 때 오히려 보이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오르공은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페르넬 부인 앞에서 똑같이 겪는다. 오르공에게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이다. 관객은 아마 이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우스꽝스러움에 웃으면서도 혹시나 자신이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움도 느낄 것이다.
오르공
... 제가 봤다니까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 / 어머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야겠어요? / 목청껏 외쳐야 하겠느냐고요!
페르넬 부인
원, 세상에! 겉보기와 다른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 눈에 보이는 걸 가지고 판단해선 안 된다고.
오르공
미치겠네.
146쪽.
클레앙트는 겉으로 화해하기, 즉 위선을 마지막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클레앙트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자가 지금 손에 쥔 걸 생각하면 / 그렇게까지 몰아붙이진 마셔야 했어요.
오르공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했지? / 배신자의 오만한 꼴을 보니 당최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더군.
클레앙트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매형과 그자가 / 겉으로라도 화해를 해서 갈등을 푸는 거예요.
제4장
오르공의 집이 타르튀프의 것임을 선언하고 오르공 일가가 집을 비우라고 독촉하는 집달리 루아얄의 등장. 법은 약속의 형식만을 보지, 내용을 보지 않는다. 무지한 광신도는 형식을 갖춘 계약서 앞에 무력하다.
제5장
페르넬 부인은 법이 집행되자 비로소 믿는다. 도린은 마지막까지 페르넬 부인을 비아냥댄다. 세상에 알리는 것(정치적 권력)을 마지막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엘미르.
엘미르
그 배은망덕한 자의 뻔뻔함을 세상에 알리세요. / 그렇게 하면 계약을 무효화시킬 수 있을 거예요. / 그자의 그 사악한 배신행위가 드러나면 / 그자의 뜻대로 돌아가도록 다들 보고만 있지는 않겠죠.
158쪽.
제6장
타르튀프가 오르공을 국왕에게 고발했음을 알리고 도망을 종용하는 발레르. 오르공이 맡고 있던 상자는 친구가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담긴 것이었다. 오르공의 재산은 이제 완전히 적법하게 타르튀프에게 넘어갔다. 오르공은 이제 인간 전체로 혐오의 외연을 확장한다.
클레앙트
제 권리로 단단히 무장을 했군요.* 그렇게 저 사기꾼 놈은 / 제 것이라 주장하는 매형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거예요.
* 죄 없는 백성에 맞서는 것이라면 아무리 재산을 증여받았다 해도 타르튀프는 그리 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재산을 몰수당할 국사범에 맞설 경우 그는 강해진다. 그가 오르공의 재산 양도 계약으로 취득한 권리가 이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고발자에게는 통상 고발당한 죄인의 재산 전부, 혹은 일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원주.
오르공
인간이란 정말이지 몹쓸 동물이야!
159쪽.
발레르는 오르공을 구해주고, 오르공은 발레르에게 감사한다. 아마 과거에 마리안과의 혼사를 방해했던 것을 속으로 사죄했을 것이다.
제7장
오르공을 국왕에게 고발하고 집행관을 대동한 타르튀프의 등장. 오르공이 타르튀프의 배신을 욕하자 타르튀프는 마지막까지 신의 이름을 판다. 흥미로운 점은, 클레앙트는 타르튀프에게 분노하면서도 끝까지 사교적인 언어를 쓰는 데 반해 다미스는 직설적으로 타르튀프를 모욕한다는 점이다.
오르공
배신자, 그걸 마지막 순간에 쓸 무기로 간직하고 있었군. / 간악한 놈, 그 한 방으로 나를 날려 버리려는 게지. / 네놈이 저지른 배신행위의 찬란한 결말이구나.
타르튀프
아무리 험한 소리를 퍼부어 봐야 난 아무렇지도 않소. / 하느님을 위해 뭐든 인내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클레앙트
참을성이 대단하시구먼.
다미스
파렴치한 놈! 하늘마저 저리 파렴치하게 농락하다니!
161쪽.
클레앙트는 타르튀프의 인내를 공격한다. 재산을 증여받기 전부터 타르튀프의 친구가 반역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클레앙트는 타르튀프의 악의적인 재산 증여를 입증했다. 오히려 타르튀프를 감옥으로 보내는 집행관. 국왕은 거의 신적인 판단력을 지닌 인물로 나타난다. 판단자는 속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국가>의 문구가 떠오른다.
집행관
... 우리 국왕께서는 사기 행각을 끔찍이 싫어하십니다. / 폐하의 눈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시어 / 어떤 사기꾼의 술수에도 넘어가지 않으시지요. / 위대하신 폐하께서는 분별력이 뛰어나셔서 / 어떤 일이건 항상 정확하게 보십니다. ... 진실한 이들을 사랑하시되 거짓된 자들은 / 마땅히 그래야 하듯 끔찍이 미워할 줄도 아십니다. / 이자도 폐하를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 그보다 더 교묘한 술책에도 빠지지 않으시니까요. / 폐하께서는 그 명석하신 통찰력으로 이자의 마음속 / 겹겹이 감춰진 비열함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 그렇습니다. 폐하께서는 이 사기꾼이 제 것이라 주장하는 / 모든 서류를 빼앗아 당신에게 돌려주라 하셨습니다. / 폐하의 절대 권력으로 당신의 전 재산을 / 이자에게 증여한다는 계약을 파기하시고 / 피신 중인 친구 때문에 당신이 / 아무도 모르게 저지른 죄도 용서해 주신답니다. / 이는 예전에 당신이 폐하의 권리를 지지함으로써 / 폐하께 보였던 충정에 대한 보상입니다. ...
164-165쪽.
국왕은 오르공이 친구의 반역에 비밀리에 개입했음을 용서한다. 이것은 과거에 국왕을 지지했던 행위에 따른 보상이다. 모든 용서의 근거는 과거의 행적, 즉 에토스이다.
마지막까지 오르공은 타르튀프를 모욕하는데, 클레앙트는 오르공의 모욕을 만류한다. 모욕은 회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관심 속에 스스로 후회하도록 두는 것이, 자기혐오에 빠지도록 두는 것이, 불행한 자에게는 최대의 사회적 처벌이자 실존적 기회이다.
오르공
(타르튀프에게) / 그래! 꼴 좋다, 이 비열한 놈─
클레앙트
아! 매형, 그만하세요. / 점잖지 못하게 그러지 마시라고요. / 저 불쌍한 인간은 불행한 운명에 맡겨 두시고 / 저 혼자 회한에 몸부림치게 내버려 두세요. / 차라리 그자가 오늘부로 / 다행히 선한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 자신의 나쁜 짓을 증오하면서 삶을 바로잡아 / 국왕의 심판이 가벼워지기를 기원하자고요. / 매형은 폐하께 가서 무릎을 꿇고 / 이리 큰 후의에 감사를 드리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