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티] 플라톤, 국가 2, 정치와 진리

1. 인용

만약에 이런 사람이 다시 동굴로 내려가서 이전의 같은 자리에 앉는다면, 그가 갑작스레 햇빛에서 벗어나왔으므로, 그의 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게 되지 않겠는가?(7.516e)

2. 동굴의 비유

<국가>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동굴의 비유’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동굴 속 사슬에 묶여 그림자만 보다가 밖으로 나와 햇볕 아래 실물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기서 그림자는 거짓이고 실물은 진리를 상징하겠지요. 그런데 이 비유에서 유달리 주목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3. 철학자의 정치적 의무

바로, ‘바깥에서 실물을 본 사람이 다시 동굴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로 이 비유가 마무리된다는 사실입니다. 철학자를 상징하는 이 사람은 진리를 마주해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내 동굴 안의 사람들, 그러니까 동료 시민이자 자신의 친구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철학자는 동굴 안으로 돌아가 바깥에서 본 것들을 전해줍니다.

4. 인문학의 위기?

동굴 안에 갇힌 사람들은 구세주가 왔다며 좋아했을까요? 전혀요! 오히려 동료 시민들은 철학자를 비웃습니다. 철학자는 자기들보다 그림자를 못 보거든요. 빛에 익숙해진 철학자의 눈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철학자가 말하는 진리는, 정치 영역에서 수많은 시민 중 하나의 의견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5. 당대 아테네 사회

당대 아테네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민주정이라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헬라스(그리스)의 맹주가 되어 이름을 떨치던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이후 중우정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어리석은 대중은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었던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요새 많이들 외치는 ‘인문학의 위기’는 플라톤이 글을 쓰던 2400년 전부터 돌림노래처럼 반복되어 왔던 것이지요.

6. 소피스테스와 쟁론술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활발했던 사람들은 ‘지혜로운 자’라는 뜻의 말싸움꾼, 소피스테스였습니다. 당대 아테네 중우정치에서는 민회에서 법정에서 말만 잘 하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말싸움에서 지면 정치적 죽음과 다름없었고요. 사람들은 돈을 주고서라도 소피스테스의 언변을 배우기를 원했고, 소피스테스는 말싸움 기술인 쟁론술(ἐριστική)의 소매상을 자처했습니다.

7. 소크라테스의 변증술

한편, 소크라테스는 변증술(διαλεκτική)을 실천했습니다. 변증술은 ‘둘이서 말하는 법’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 ‘대화’로도 해석됩니다. 변증술에 참여하는 상대방은 대화의 결과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지식의 범위를 확장합니다. 변증술의 관점에서 보면,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소피스테스의 쟁론술은 단지 겉으로만 지혜롭게 ‘보일 뿐’ 실제로 지혜롭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8. 변증술 적용: 젠더와 직능

<국가>에서 변증술은 특히 젠더 문제에 적용됐습니다. 시민이라면 성별에 상관 없이 폴리스를 위한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는데, 그 근거가 변증술을 통해 제시됐기 때문입니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변증술을 “언급되고 있는 것을 형상에 따라 나누어 검토하는 방법”(5.454a)이라고 말한 뒤에, ‘성별에 따라 직능이 달라야 한다’는 주장은 ‘대머리가 제화공이 될 수 없다’는 주장과 비슷하다고 비판합니다. 성별은 신체적 특징이지만, 직능은 정신적 성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9. 질서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모든 의견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조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글쎄요, 플라톤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죽었어!’라고 말이죠. 변증술은 대화를 통해 좀 더 고차원적인 것들을 찾아 나가는 활동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들을 가치가 있는 말과 입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의 차이, 즉 의견의 우열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걸 ‘질서’라 부릅니다.

10. 모임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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