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용
바로 이것, 정의를, 우리가 진실이나 받은 것에 따라 갚는 것이라고 단순히 말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이 어떤 때는 정의롭게 혹은 정의롭지 않게 만든다고 말할 것인지요? (1.331c)
2. <국가>의 주제
정의가 무엇인지 찾는 대 여정, 플라톤의 <국가>라는 대화편은 이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정의가 ‘특정한 행위를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냐, 행위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냐’를 묻는 질문입니다. 작중 화자인 소크라테스가 묻는 이 질문, 어디서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3. 정의란 무엇인가

‘기차가 달려오고 있다. 선로에는 사람들이 묶여 있다. 선로를 바꾸면 한 사람이 죽고, 그대로 두면 다섯이 죽는다. 당신은 선로를 바꿀 것인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읽어본 트롤리 딜레마입니다. 이 딜레마가 묻는 것도 <국가>의 질문과 정확히 동일합니다. ‘특정한 행위가 반드시 정의롭냐, 행위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냐?’ <국가>는 고대 그리스판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4. 폴리스와 인간
그렇다면 플라톤은 둘 중에 무엇이라 말했을까요? 인간은 너무 작아서, 큰 것부터 보자고 말합니다. 바로 인간들의 모임인 ‘폴리스(πόλις)’입니다. 폴리스는 아테네나 스파르타 같은 도시국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현대인이 쓰는 정치(politics), 정체(polity), 경찰(police), 폴티(polty)의 뿌리가 되는 말이기도 하고요. 폴리스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인간에게도 정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게 (소크라테스에게 배운) 플라톤의 생각입니다.
5. 부분과 전체
폴리스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살고 있지요? 그들을 분류해보면 이렇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생산자’, 만든 물건을 지켜내는 ‘수호자’, 그들 모두를 지휘하는 ‘통치자’. 이 세 부분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폴리스라는 전체가 정의롭게 기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세 부분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을 원하는 ‘욕구’, 스스로를 지키려는 ‘격정’, 이 모두를 조절하는 ‘지혜’가 바로 인간의 영혼이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세 부분입니다.
6. 덕목과 정의
세 부분이 조화를 이룬다면 나타나는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덕목입니다. 폴리스의 생산자나 영혼의 욕구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제라는 덕목이 좋을 것입니다. 수호자와 격정에는 용기가, 통치자와 지혜에는 현명함이 좋을 것이고요. 덕목을 갖춘 부분이라면 자연히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정의입니다. 정의로운 폴리스나 정의로운 인간은 결국 같은 것이지요.
7. 불의
폴리스는 부분들의 조화가 깨질 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절제를 잃은 폴리스는 중우정치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마구 원할 것입니다. 용기를 잃은 폴리스는 명예의 진짜 의미를 모르거나 전쟁에서 맞서 싸우지 못할 것이고요. 지혜를 잃은 폴리스는 참주라는 악독한 지배자가 나타나 모두를 폭력으로 지배할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 즉 정의의 반대인 불의한 상태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의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인간이라는 전체가 타락해버릴 겁니다.
8. 가장 정의로운 인간, 철학자
그렇다면, 가장 정의로운 인간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생산자, 수호자, 통치자 모두 각각의 덕목을 갖춘 폴리스처럼, 인간에게도 영혼의 모든 부분이 조화를 이룬 인간 말입니다. 플라톤은 그런 인간을 철학자라 부릅니다. 절제, 용기, 지혜를 모두 갖춰 가장 정의로운 인간은, 겉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쉽게 보이지도 않고 영원히 변하지도 않는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철학자가 폴리스를 통치하거나, 통치자가 철학을 탐구하면 가장 좋은 폴리스가 될 겁니다.
9. 본과 유토피아
그런 인간은 과연 존재할까요? <국가>에서 화자인 소크라테스는 폴리스와 인간의 본(παράδειγμα)이 이와 같다면서 길게 설명합니다. 그의 말을 듣던 제자 글라우콘이 묻습니다. 그런 폴리스와 인간은 이 땅에 없는 유토피아 같은 것 아니냐고요. 소크라테스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런 본이 바로 철학자가 탐구하는 진리 아닌가요?
10. 모임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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