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ΠΟΛΙΤΕΙΑ)』 읽기 | 3권

3권은 문학에 관한 장이다. 플라톤이 시인을 국가에서 추방하자고 했다거나 단순 모방에 그친 예술의 가치를 폄하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어보면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거짓말에 관한 논의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거짓말에 대한 논의는 2권에 나타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에 통용되는 이야기가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은 그 자체로 선한 존재이므로 모든 선한 일의 원인이기 떄문이다. 따라서 거짓말이나 인간의 악덕을 신이 직접 범하거나 신의 탓으로 돌리는 작품은 이상국가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상국가에서는 이런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인간은 신의 모습을 닮아야 하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적절하지 않은 신화나 이야기들, 문학작품들이 무분별하게 통용되면 후속세대는 그 이야기에 영향을 받는다. 그냥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혼에 새겨져 품성을 형성한다. 언어가 세계를 만들고, 인간은 그 세계 안에서 행위하며 사는데, 과거의 행위가 축적되어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해명이 필요한 지점은, 거짓말이 때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여지를 남긴 부분이다. “그럼 말을 통한 거짓(λόγοις ψεῦδος)은 어떤가? 그건 어떤 때에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유익한 것이어서 미움을 사지 않을 만하겠는지? 결국 그것은 적에 대해서가 아닐는지? 또한 이른바 친구들 중에서도 광기나 어떤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나쁜 짓을 저지르려 들 때, 그때에 그걸 막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약처럼 유익하지 않겠는가?”(382c) 소크라테스는 속은 줄도 모르는 진짜 거짓을 무지라고 규정하고 무지는 신과 인간 모두에게 미움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면서도 다르게 말하는 거짓은 거짓말이고, 거짓말은 때로 유익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분명 아까까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고서는, 얼마 안 가 거짓말이 유익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 모순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

그 문제의식이 3권의 핵심이다. 소크라테스는 작품의 내용, 형식, 구조에 관해 논한다. 내용에 대해서는 2권 막바지에서 이미 논구를 끝마쳤다.

문학작품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가가 자신의 시점에서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등장인물의 관점에 들어가 마치 자기자신인 양 말하는 것이다. 모방(μίμησις)은 역시 다른 덕목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능(ἔργον)이라 단번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없다. 그러니 서사시나 신화에서 자신이 마치 여러 등장인물인 양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등장인물의 성격(특성/캐릭터, χαρακτήρ)을 탁월하게 모방하지도 못할 뿐더러, 결국 자기 시점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 하기 때문에,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표현 방식에 대해서도 같은 논의가 적용된다. 형식은 내용에 뒤따른다. 불운에 굴복하는 슬픈 곡에 어울리는 음조와 운율은 배척되어야 한다. 수호자에게는 특히 용기와 친밀함을 겸비하도록 독려하는 작품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것에 편중되어 유약하게 만들거나, 육체적인 것에 편중되어 야만스럽게 만드는 경우 교육은 실패한다.

그러나 문학의 기능은 분명하다. 문학이 결핍된 사람(ἄμουσος)은 논의를 싫어하는 사람(μισόλογος)이 된다. 문학은 각자의 혼 안에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본(παράδειγμα)을 마련해준다. 통치자의 건국설화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직능과 관계없이 지껄이는 거짓말은 분명 배척되어야 한다. 그러나 같은 땅에서 났다는 말로 구성원 사이에 형제애를 돈독하게 만들거나, 금-은-동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말로 천성과 양육에 따라 서로 다른 직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후속세대를 납득시킬 수 있다면, 나라를 세우는 통치자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분명 거짓임을 알고 있는 건국 당시의 구성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ἄρχον)와 수호자(φύλαξ)는 다른 무엇보다 신념(δόγμα)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나라의 이익이 곧 자기 자신의 이익이라는 소신(δόξα) 아래, 외부의 적으로부터, 내부의 동료들(ἐντὸς φιλίων)로부터, 수호자의 훌륭한 행위로, 온전히 공동체의 신념을 지킬 때, 그때 그들은 완벽한 수호자(φύλακας παντελεῖς)들이 된다. 그러한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수호자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인간은 자족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나라는 필요로 인해 구성된다. 정의와 부정의는 그 필요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나뉜다. 다툼은 탐욕으로 인해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핵심은 모두가 절제(σωφροσύνῃ)하는 것인데, 수호자가 동료들에게 절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절제하게 되는 공통의 신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호자는 공동생활을 해야 하고 사유재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고난을 겪음으로써 결핍을 알아야 한다. 수호자가 자신의 땅(γῆν)과 사적인(ἰδίαν) 가정(oἰκίας), 돈(νομίσματα)을 얻으면 수호자라기보다 지주(γεωργοί)로 성격(특성/캐릭터, χαρακτήρ)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다른 시민들의 협력자(συμμάχων) 대신 적대적인(ἐχθροί) 주인(εχθροι δεσπόται)”이 될 것이다. (41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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