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말은 힘을 갖고 있다. 말은 자기 자신과 세계, 그리고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은 인간을 움직이게 만들고, 움직이는 인간은 모든 것을 바꾼다. 심지어는, 약속과 같은 말들이 매순간 바뀌는 인간의 마음과 모습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다. 말의 힘은 변화와 안정으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말은 인간에 한계를 짓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말은 사실을 가리키더라도 의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의견은 믿음의 표현이다. 믿음은 참과 거짓으로 판별될 수 없고 ‘동의할 만함’과 ‘동의할 수 없음’으로 판단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말을 따져봐야 하는 이유이며, 매번 새로운 말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이다.
논리와 경험도 그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논리적 타당성은 어떤 믿음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표현일 뿐이며, 경험적 건전성은 여러 사람이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경향을 나타낼 뿐이다. 예컨대, ‘모든 백조는 하얗다’, ‘너는 백조다’, ‘너는 하얗다’는 삼단논법은 백조와 흰색과 네가 다르지 않다는 믿음의 다른 표현들이다. 물론 이 믿음은 ‘검은 백조’나 ‘인간인 너’를 보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지지받을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지지 역시 말로 표현되는 믿음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말을 막으면 조직은 단절된 개인의 집합으로 전락한다. 아무도 새로운 말을 꺼낼 수 없고, 누군가의 말이 맞거나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조직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그런 조직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바꾸거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을 잃은 사람은 힘을 잃는다.
“말을 하세요”라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건 아니다.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말은 정보가 차단되거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진다.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외면한다면, 말하라는 말은 강요에 지나지 않고 소통을 위한 캠페인은 유명무실하다. 말을 잃게 만드는 상황을 지적하고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고칠 때에만 사라진 말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정보가 막히면 말도 막힌다. 정보는 믿음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감각, 기록, 사건은 인간에게 말할 거리를 제공한다. 정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고 그 의견에 타인도 동의하리라고 믿을 수 있다. 모든 정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이의 말을 잃게 하는 정보는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진리를 말할 수 없고 단지 타인의 동의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정보 그 자체로는 말이 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정보는 인간의 믿음을 보조할 뿐, 의견의 핵심은 개인의 믿음이다. 정보를 말로 간주하는 곳에서는 정보의 범람이 오히려 말을 막을 수도 있다. 어떤 정보가 다른 정보와 연관된다는 믿음, 혹은 그 정보로 인해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는 믿음이 의견이다. 의견 없이 정보만 나열하는 말은 사실적(factful)일 순 있어도 정직할(truthful) 수는 없다. 그래서 의견을 제시하기에 앞서 정보와 믿음을 정제하는 심사숙고의 시간은 필수이다.
자유가 사라지면 말도 사라진다. 조직에서 자유는 반대할 자유이다. 모든 사람이 다른 이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타인에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할 자유는 인간과 그의 말이 적절히 거리를 유지할 때 보장된다. 사람이 말을 했다는 이유로 혹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말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아니면 반대했다는 이유로 위협을 느낀다면, 그는 위협하는 이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위협은 물리적 위협을 넘어 경제적이거나 감정적인 위협도 포함한다. 반대로, 어떤 이가 탁월한 말을 했는데도 모두가 그를 외면한다면 그는 더 말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좋은 조직은 수다스러운 조직이다. 그런 조직에서는 누군가 말하도록 독려하지 않아도 모든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말한다.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그런 조직에 합류한다면 금상첨화다. 판단은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말을 할 줄 아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판단력이 탁월한 사람은 솔직함과 무례함을, 상냥함과 심약함을 구분할 줄 안다. 넷플릭스가 극도의 솔직함과 함께 탁월한 판단력을 뺴놓지 않은 이유, Patty McCord가 사람들의 힘에 주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단력을 갖춘 인간의 말에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