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기업의 채용사이트를 기웃거리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소위 ‘뜬다’고 평가 받는 몇몇 기업들이, 특정한 책을 마치 마케팅하듯이 회사의 문화와 연관지어 공개하거나, 그 책을 읽었는지 여부를 평가 요소에 반영하겠다고 공개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에서 나는 경영철학이라는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과거에는 철인왕 같은 지도자가 각광받았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고, 소수의 엘리트가 그를 보좌하며 다수의 군중은 그 혹은 그들의 지도에 순응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막스 베버가 종교적 신념으로 국민성을 평가할 수 있으리라고 본 것과 같이, 전후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평가할 수 있다면 그러한 이념형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런 지도자상은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고스란히 유지됐다. 경영철학이라고 하면 지도자 한 명의 대표, 혹은 소수의 엘리트를 대표이사로 내세운 뒷선의 회장들이 읽은 책, 어록, 그들의 행적들을 의미했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다르다. 정치권에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강조했던 노무현의 사례에서 보듯이, 단일한 리더, 소수의 엘리트, 순응하는 다수라는 공식은 점차 변형되어, 조직된 다수가 소수의 권한을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이명박을 기점으로 소수의 권력계층에 필연적인 부패의 문제(이건 노무현에게서도 치명적인 문제였다)가 공론화됐고, 박근혜에 이르러서는 다수의 시민이 자신들의 기준에 미달한 대통령을 합법적으로 교체하는 사건이 나타났다. 이러한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놓고 보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신념의 체계가 변화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본다.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가 읽은 책은, 로마의 사례를 통해 공화주의적 자유가 자유지상주의에서 말하는 자유 개념과는 다르다는 점을 주장한, 비롤리의 『공화주의』다. 물론 대표 한 사람이 읽은 책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경영철학’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책 내용과 연관지어 들여다보면, 과거의 경영철학과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책은 자유라는 미명 아래 억압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몇몇 사안에 간섭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입장은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의 행보와도 연관된다. 그래서 이름을 ‘공화국 만세’로 지었다 하니, 비바리퍼블리카는 하나의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기업문화 형성, 업무 효과 제고, 채용 브랜딩을 해나가고 있다. 그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 그러한 사상에 부합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구성원 모두에게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문화 자체가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당근마켓에서는 비바리퍼블리카만큼 경영철학의 일반화를 강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특정한 책을 읽었는지 여부를 우대사항에 넣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열거한 책들의 내용을 보면, 성과를 양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질적 방법에 관한 내용들이다. 전직장, 경력 등 양적으로 치환하기 쉬운 질적 요소들이 가진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채용 방식으로 보인다. 실제 면접에서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그러한 평가가 팀 내에서 또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렇게 해서 합류한 사람이 그 팀 내에 잘 녹아들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도가 계속되어야 ‘영어를 배워 미국에 넘어가 통계를 배우면 성공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석사 논문에서 세계가 믿음의 총체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어떻게 믿음을 갖느냐에 따라 활동이 달라지고 자신과 세계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러한 믿음이 세대를 넘어 지속되면 제도로, 명목적인 문서로 기록되면 법으로, 그래서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원래 모습인 양 느껴진다면 문화로 불린다. 경영철학의 개념이 과거에는 지도자나 소수 엘리트가 갖고 있는 믿음이었다면, 요즈음에는 그 기업에 속한 구성원이 갖고 있는 믿음의 총체로 점차 바뀌고 있다. 요즘의 경영철학이 기업문화로 진일보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음은 지금까지 발견한 기업과 책이다. 다른 기업에서 이렇게 책을 명시적으로 내세우는 사례는 아직 찾지 못했다.
- 토스(비바리퍼블리카)
마우리지오 비롤리, 『공화주의』 (CEO)
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CEO)
패티 맥코드, 『파워풀』 (CE)
닐스 플레깅, 『언리더십』 (CE)
앤절라 더크워스, 『그릿 GRIT』 (CE)
프레데릭 라루, 『조직의 재창조』 (CE) - 당근마켓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
라즐로 복,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넛지』
앤드류 그로브,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