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 용어를 자곤(jargon)이라 한다. 자곤은 일상 대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한 산업군이나 학계처럼 제한된 공동체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동체에서는 오히려 자곤이 일상적이다. 어떤 사람의 말만 보고도 그 사람에 대해 대강 알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런데 자곤은 나름의 맥락을 지니고 있어서 일상적인 단어로는 대체할 수 없다. 흔히 사용하는 힘(force)라는 단어와 뉴튼이 사용하는 force는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명하자면, 일상적인 force는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가 일어나도록 만드는 요소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래서 운명도, 군대도, 경찰도 force와 연관된다. 뉴튼의 force에는 어떤 물체의 움직임을 질량과 가속도라는 두 가지 요소로 해석한다는 맥락이 담겨 있다.
자곤의 힘은 효율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발견한 생각이 자곤으로 굳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가 그 생각에 이르기까지 애쓴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된다. 자곤은 또 다른 자곤을 낳으면서 점점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대화의 수준이 높다고 할 때, 유일하게 양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면 자곤이 담고 있는 정보의 양일 것이다. 학문의 발전을 양화하면 자곤이 심화되어가는 과정과 동일시할 수 있다.
한편 자곤에는 대화를 협소하게 만든다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자곤의 수준이 너무 심화되면, 대화에 참여하던 사람이 의미를 잃고 이탈하거나, 대화 밖에 있던 사람들이 진입할 수 없다. 자곤의 함정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지적 허영심과 고립감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자곤의 문제는 치명적이다. 인간이 마치 신처럼 홀로 살 수 있다면, 자기가 원하는 만큼 자곤을 만들어서 쓰면 된다. 아니, 자곤 자체가 필요없을 것이라 보는 편이 맞겠다. 말로 생각을 나눌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 말로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지 못한다면, 인간은 단지 생각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본 사람은 넷플릭스의 전설, 패티 맥코드(Patty McCord)다. 그는 2017년 파워풀(Powerful)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팀장들에게 '엄마에게 말하듯 그 문제를 설명하라'라는 규칙을 제시했다. 예전에 내가 주도해서 만든 인재관리 계획을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뭘 하자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구나'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녀의 말은 언제나 옳다. 복잡한 전문 용어를 사용해 설명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함께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조직을 죽인다. 자기가 아는 게 세상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그의 식견이 너무 좁아 세상의 전부를 알고 있다고 침소봉대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곤을 말할 줄 안다는 데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정작 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렇게까지 교만하지 않더라도, 자곤을 쉽게 풀어 설명하지 않는 사람은 조직을 위험하게 만든다. 그가 타인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자곤의 함정에 빠진 사람은 세계를 위험에 빠뜨렸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도 제 입으로 관청용어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자곤을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은, 너무나 심화된 자곤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우스꽝스러운 말은 듣는 이에게 비웃음 말고는 아무런 행위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곤이 지닌 가치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자곤은 효율적인 사고와 현대 사회의 발전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사회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곤이 일상적인 말로 풀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회사든, 관료집단이든, 하물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떤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통용되어야 그 공동체가 유지된다.
어머니도 이해할 수 있게 말하자는 생각은 공동체를 세계로 확장하고 영속시키는 데 아주 중요하다. 이미 모든 어머니는 어린 아이도 이해할 수 있게 말 걸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말이 세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