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버거, 토마스 루크만, 『실재의 사회적 구성』, 하홍규 역, 문학과 지성사, 2013.
Peter L. Berger (1929~2017)
지식사회학의 문제
이 책의 주제는 (1) ‘실재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고, (2) ‘지식사회학은 그 과정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재(reality)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지닌 특질이고, 지식(knowledge)은 그러한 특질을 지닌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이다. 실재와 지식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사회마다 다르게 이해된다’고 받아들이지만, 철학자들은 ‘당연한 것은 없으므로 그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사회학자는 일반인과 철학자 사이에 있으므로 ‘왜, 그리고 어떻게 사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지식사회학(Wissenssoziologie)은 1920년대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셸러(Max Scheler)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였다. 지식사회학은 고대부터 “인간의 사고와 사회적 맥락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학문으로 이어져 왔으나 주변적 관심에 머물렀다. 특히 마르크스, 니체, 딜타이의 사상을 통해 발전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에서 사용한 하부구조/상부구조 개념은 다소 오해되긴 했으나 지식사회학이 받아들여 유용하게 사용했다. 니체의 반관념주의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지식사회학이 탄생하는 분위기를 마련했다.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딜타이의 역사주의인데, 어떤 사건도 역사적 맥락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으므로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관점에 적합했다. 셸러는 상대성을 초월하는 보편적 인간학을 설립하기 위해 지식사회학을 도구적으로 이용했다.
셸러에 따르면, 실재는 관념을 드러내지만 관념의 내용은 변화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사회는 존재(Dasein)를 결정하지만, 관념의 본질(Sosein)을 결정하지는 않는다.”(21) 지식은 개인의 경험 이전에 사회에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고, 개인이 경험한 바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지식사회학의 핵심이다. 셸러의 지식사회학을 현대적으로 정식화시킨 것은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이다. 그는 인간의 사고를 이데올로기라는 맥락에서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므로 상관주의(relationism)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지식은 항상 어떤 특정한 입장에서의 지식이어야 한다”(24)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하임에 따르면 다양한 관점에서 도출된 의견을 축적할수록 실재는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유토피아적 사고는 실재를 왜곡하기도 하지만, 그 유토피아에 맞게 실재를 변경시키기도 하므로 긍정적이다. 셸러와 만하임의 이론은 각각 온건(moderate)한 지식사회학, 과격(radical)한 지식사회학으로 평가된다.
[실재와 관념의 관계를 보아 셸러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실재가 관념을 변경할 수 없다고 했지만 만하임은 그 반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지식사회학은 다양하게 연구되어 왔지만, 인식론적 문제와 지성사에 천착했다는 한계를 갖는다. 사회학적 지식이 타당한지에 대한 방법론적 물음은 지식사회학의 한계를 넘어선 물음이므로 철학에서 해결해야 한다. 사상의 역사는 경험적으로 의미있지만, 지식사회학은 좀 더 큰 범위에서 논의된다. 지식사회학은 세계에 대한 이론적 해석보다 사회 구성원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비이론적 삶에서 ‘실재’라고 ‘아는’ 것”(31)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따라서 지식사회학의 대상은 사상보다 상식이며, 사회를 구성하는 ‘의미의 구조(the fabric of meaning)’인 지식을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실재의 사회적 구성’이 지식사회학의 관심사이다. 알프레드 슈츠(Alfred Schuetz)는 ‘상식적 사고’가 지식사회학이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책의 목적은 사회학 이론들을 종합하여 지식사회학을 사회학의 중심부로 옮기는 것이다. 뒤르케임은 “사회적 사실을 사물로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베버는 “사회는 실로 객관적 사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지식사회학에서 중요한 과제는 ‘독자적인 실재(reality sui generis)’에 관한 것으로서 주관적 의미가 객관적 사실로 변하는 과정을 밝히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활동(Handeln)이 사물(choses) 세계를 산출하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다.
[아렌트의 사물 세계 개념이 지식사회학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음을 볼 수 있음]
일상생활에서의 지식의 기초들
일상생활의 실재
이론가들의 실재가 아니라 ‘상식의 실재’가 지식사회학의 대상이며 이 실재는 ‘일상생활의 세계에 대한 이해’이다. (39) “상호주관적 세계를 구성하는 주관적 과정들의 객관화” (40) 일상생활의 주관적 경험에 대해 분석한다는 점에서 지식사회학은 경험적이지만, 존재론적, 인과적, 발생론적 가설 수립을 기피하기 때문에 과학적이지는 않다. (41) 의식의 지향성에 따른 대상들은 그 실재와 관계 없이 지향적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실재는 다양한 층위로 형성되어 있으며, 나는 그 실재들마다 각각 고유한 긴장감을 의식한다. 예컨대 꿈과 현실 같은 실재의 영역 즉 의미구역(finite provinces of meaning)들을 넘나들 때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42, 48) 일상생활의 실재는 객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고조된 긴장감을 제공한다. 내가 일상생활에 등장하기 전부터 사용되는 질서정연한 언어가 나로 하여금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43) ‘여기’ 공간적으로 있는 나의 육체와 ‘지금’ 시간적으로 있는 나의 존재함에 대한 멀고 가까움을 기준으로 일상생활의 실재성이 조직된다. 서로의 의미를 공유함으로써 일치함을 확인하는 상호주관적 세계 즉 공통세계(common world)는 실재성이 나타나는 공간이다. (44-46) 일상생활의 실재는 내 상식이 문제 없이 재통합할 수 있는 한 별도의 정당화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일종의 권위를 갖는다고도 볼 수 있겠다.] (46-47) 일상생활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구조화된다. 시간성은 의식 내면과 외면 모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식의 본질적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의 [세계]지속성과 [죽음]제한성은 근본적인 불안감을 일으킨다. 시간의 순서는 강제력을 가지고 사건에 역사성을 부여한다. (49-52)
일상생활에서의 사회적 교섭
상대를 마주하는 면대면 상황에서 상대방은 실재성이 가장 극대화된다. 나의 표정에 맞추어 상대의 표정이 변화하는 거울 반응은 상대방의 주관성을 가깝게 느끼도록 한다. 글이나 편지는 면대면 상황에 비해 상대방의 표현(expressivity)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표정과 그에 대한 나의 태도가 매순간 변화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실재를 전형화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러나 상대방은 일정 부분 그가 속한 상위 개념으로 전형화되며 거리를 늘이기 때문에 익명성을 야기한다. 타자는 ‘지금 여기’와 ‘익명’ 사이의 연속선 안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시공간적으로 거리가 먼 타자들과도 관계맺을 수 있게 된다.
일상생활에서의 언어와 지식
인간의 표현은 표정이나 도구 사용, 기호 생산으로 객관화된다. 실재는 객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객관화는 사물의 지속성을 통해 가능하다. 기호는 ‘지금 여기’ 즉 생산자의 주관성과의 분리 가능성에 따라 객관성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언어는 의미화된 음성 기호 체계로서, 면대면 상황에서 분리될수록 객관성과 지속성을 얻어 시간성을 극복한다. 대화 중에 나는 말하면서 스스로 듣기 때문에 나의 주관적 의미는 객관성과 지속성을 얻어 실재성이 증가된다. (66) 언어가 실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될 때 내가 체계에 따르도록 강제함으로써 나의 주관성을 유형화하고 익명화한다. 언어는 공간적, 시간적, 사회적으로 ‘지금 여기’와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초월(transcendence)적 속성을 갖는다. 언어는 일상생활의 실재를 초월한 대상을 가리켜 그 의미를 해석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 이때 적용되는 체계를 상징 체계(symbolism)라 한다.
언어는 사회적으로 의미의 영역을 구분해 지식의 사회적 저장고(social stock of knowledge)를 구성한다. 어떤 저장고에 참여하는지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며, 상식적인 의미 해석의 수준이 결정된다. 예컨대 어떤 위치의 개인에게는 당연한 것이, 다른 위치의 개인에게는 가능하지 않다. 지식의 사회적 저장고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것은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식, 즉 어떤 현상에 대한 투입-결과의 관계에 대한 처방전 지식(recipe knowledge)이며 소속된 개인은 그 원리에 대해 대체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원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는 그 지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이다. 친밀성은 실재성을 구분함으로써 사건의 배경을 구성한다. 친밀하지 않은 영역은 처방전 지식 이면의 어두운 원리의 영역이다. 일상생활의 지식은 나와의 상관성에 따라 구조화되며 개인마다 서로 다른 상관성은 서로에게 흥미를 유발한다. 모든 각각의 개인은 서로 다른 유형에 따라 다르게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서로가 사회 안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사실을 지식의 사회적 분배라고 일컫는다.
객관적 실재로서의 사회
제도화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세계에 편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과 세계개방(world-openness)적 관계를 갖는다. (81-82) 인간은 본질을 가진 존재라기보다 사회적으로 타인과 함께 자신의 본질 혹은 인간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내는(self-producing) 존재이다. (84-87) [조건지워져 있지만 조건을 만들기도 하는 존재라는 아렌트의 설명과 비교할 필요 있음] 따라서 고립된 인간은 동물적이다. (88) 인간의 유기체적 속성은 변화적, 혼돈적이지만 선취된 사회적 질서에 따라 인간 존재 스스로를 외재화함으로써 안정적 환경을 구성한다. (89-90)
제도는 습관화된 활동으로부터 발생한다. 습관화된 활동은 변화를 위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제도는 인간 활동에 역사성과 통제성을 부여하며 모든 교섭에서 나타난다. 전통의 형태로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되는 제도적 세계는 사회 속 개인에게 객관적 세계이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물화(Versachlichung) 개념에서 비롯된 객관화(objectivation)는 인간의 주관성이 활동을 통해 외면에 나타난 산물이 객관성이라는 속성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사회는 인간의 산물이다. 사회는 객관적인 실재이다. 인간은 사회적 산물이다.” (102) 제도는 개인이 기억으로 떠올릴 수 없지만 앞선 세대로부터 전통으로 전해받은 것이므로 정당화(legitimation) 즉 설명되는 방식이 필요하다. 역사화되고 객관화된 제도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인간의 활동을 통제한다.
개인의 경험 중 일부는 기억 안에 기억할 수 있는 실체로 침전(sedimentation)된다. 다수의 개인이 공통된 경험을 공통의 지식 저장고에 침전할 때 상호주관적 침전이 발생하고, 이 침전은 어떤 기호 체계 안에서 객관화할 때 사회적이게 된다. (111) 제도는 역할을 통해 인간에게 특정한 활동을 요구하고 질서를 재현(representation)한다.
정당화
주관적 실재로서의 사회
실재의 내면화
실재는 대화를 수단으로 유지된다. 대화는 세계를 전제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함축적이다. 개인은 대화 과정에서 의심에 대해 토론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재를 생성한다. 언어는 질서를 구축하여 세계를 이해하기 때문에 언어가 세계를 현실화한다고도 볼 수 있다. (231-232)
내면화와 사회구조
정체성에 대한 이론들
유기체와 정체성
지식사회학과 사회학 이론
[같이 읽으면 좋을 것들]
Max Scheler (1874~1928) (Hans-Joachim Lieber, Wissen und Gesellschaft, 1952)
Karl Mannheim (1893~1947),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