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관점으로 본 고대 중국의 정치 사상

들어가며

2021년 1학기 동안 ‘중국철학사 입문’이라는 과목을 흥미롭게 들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고대 중국의 사상에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교차하는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렌트와 고대 중국의 정치 철학은 공통적으로 현실적인 문제에 주목했지만, 아렌트는 정치 현상을 그녀 고유의 인간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한 반면, 고대 중국의 사상은 공통적으로 군(君)-신(臣)-민(民)의 질서를 전제하여 더 나은 정치를 추구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정치 영역에서 평가 기준의 다양성에 영향을 끼쳤다. 고대 중국의 정치 사상을 아렌트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동아시아권에서 이해하는 정치 현상이 도덕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아렌트의 정치 사상을 바탕으로 고대 중국철학을 개괄하고 그 중 유가 철학에서 정치와 도덕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렌트가 동양의 사상에 관심을 가졌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삶과 세계, 타인이라는 보편적 조건은 시공간적 특수성을 초월하여 인간사의 영역을 형성한다. 따라서 아렌트의 사상은 시공간적으로 거리가 멀더라도 동양의 정치 철학을 이해하는 한 가지 관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그 먼 거리로 인해 동양의 정치 철학이 갖는 특징을 좀 더 부각시키는 독특한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보면,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가 철학은 현실에서부터 문제의식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지배-피지배 관계를 옹호한다는 내재적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한계는 하늘이라는 초월적 권위에 의존하는 맹자에 이르러 명백히 드러난다. 맹자를 비판하며 학설을 정립한 순자도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성공하지는 못했으므로 유가 철학의 내재적 한계를 답습했다. 정치와 도덕을 동일시한 유가 철학의 한계는 한비자의 법가 사상이 등장하고 나서야 최초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렌트의 사상과 중국철학의 네 흐름

거칠게 일반화해보면 중국 고대 철학은 유가, 도가, 묵가, 법가의 네 갈래로 흐른다. 아렌트의 시각으로 중국 철학의 흐름을 재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첫째, 인간사의 영역 긍정. 아렌트는 살아 있는 사람이 세계 속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사의 영역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사의 영역은 변화와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인간의 행위는 ‘예측할 수 없음’과 ‘돌이킬 수 없음’이라는 두 가지 큰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법칙과 같은 보편적 원리는 자신의 지배 아래 놓인 모든 것들을 필연적으로 결정한다. 자연법칙 아래 인간은 종(種)적으로 존재하며 개별적인 인간의 차이는 드러나지 않게 된다. 인간사의 영역이 부정되면 인간의 활동(activity)은 도외시되고 오직 외부 환경과 본성(nature)에 따른 반응에 대해서만 언급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조건적 존재로서, 조건에 제약되지만 동시에 조건을 구성하는 존재이다. 인간의 활동은 삶과 세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독창적인 인간사를 시작한다. 반면 도가 사상은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를 주장한다. 작위적인 행위를 하지 않아야 비로소 도(道)에 부합하는 현상을 얻게 된다는 이 사상은 작위적인 행위를 그 본질로 하는 인간사의 영역을 긍정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노장(老莊)은 아렌트의 사상과 거리가 멀다.

둘째, 정치의 사회화 비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아렌트는 인간사의 영역을 현상학적으로 고찰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삶의 필연성에 종속된 사적(private; οἶκος) 영역과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공적(public; κοινόν) 영역을 엄격히 구분했다. 그리스적 영역 구분을 따른 로마인들은 새로운 영역을 발견했는데, 바로 사적인 일을 공적으로 수행하는 사회적 영역(societas)이다. 사회적 영역이 본격적으로 지배적 위치를 점하게 된 시점은 중세 기독교 사회부터였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신성한 영역을 중시함으로써 공-사의 영역구분을 뭉뚱그려 세속적 영역으로 합쳤다. 신 앞에서 인간은 모두 동일한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말과 행위를 통해 각자의 차이를 드러내는 공적 영역이 파괴되었다. 근대 사회에 이르러 인간은 생산성(productivity) 즉 효용(utility)이라는 단일한 가치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기술의 발전으로 현대 문명은 원자력과 같이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을 갖추었으나 그 힘을 사용하는 일에 대한 판단을 전문가 사회에 의존함으로써 인간의 세계는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아렌트가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가 시민의 정치 행위를 보장하는 공적 영역의 회복과 고전적 공-사 영역의 구분의 회복을 지지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묵자의 겸애설이나 이익설은 아렌트의 사상이 비판 지점으로 삼는 사회적 영역의 모습과 유사하다. 겸애설은 ‘모든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주장함으로써 군신관계와 부자관계의 구분을 거부하는 학설이고, 이익설은 노동을 통한 생산성이라는 단일한 가치로 유가(儒家)와 예악(禮樂)을 거부하는 학설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비공(非攻)설 역시 아렌트의 폭력 비판과 일견 비슷한 지점으로 보이지만, 도출된 결론만 동일할 뿐이다. 비공을 지지하는 묵자의 전제는 엄격히 공리주의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아렌트의 사상과와 큰 차이를 보인다.

셋째, 정치와 도덕 구분. 아렌트가 보기에 정치적 행위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로 평가할 수 없다. 정치 행위는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간사의 영역에서 벌어지므로 이미 일어난 현상의 결과이지만, 도덕 판단은 외면적 행위의 결과와 더불어 인간의 내면에서 그 행위를 추동한 동기를 함께 저울대에 올리기 때문이다.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행위의 본질은 인격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볼 때 잘 드러난다. 어떤 개인의 법인격(person)은 고대 로마의 연극에서 쓰인 가면(persona)에 어원을 둔다. 가면이 배우의 존재를 가리면서 동시에 목소리만 드러낸다는 성질을 볼 때 공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행위는 본질적으로 인위적이며 내면을 은폐한다. 반면 가면으로 얼굴을 감춘 채 연기하는 배우를 가리키던 단어(ὑποκριτής)는 위선자(hypocrite)를 가리키도록 변화했다.(Hannah Arendt, On Revolution, 1963. pp.106-108) 아렌트의 주장을 살펴볼 때, 인간 행위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인공적 영역에 드러난 행위와 그 내면에 감춘 동기가 언제나 일치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공적 영역에서 도덕적 가치를 더욱 중요시한 나머지 내면적 동기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 공동체를 유지하는 정치는 불가능하며 모든 행위는 타락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사례는 프랑스 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의 활동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도덕적 가치를 정치 영역에 무비판적으로 반영한다면 행위와 평가의 다양성을 제한하여 진정한 정치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렌트의 도덕관이다. 도덕을 인간 내면의 영역으로 제한하여 정치와 분리하자는 아렌트의 도덕관은 유가와 법가를 구분하는 주요한 기준이 된다. 유가는 개인의 도덕성을 최대한 발현할 때 좋은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학설을 제시하는 반면, 법가는 도덕적으로 권장되는 행동이 정치적으로 권장되는 행위와 서로 같지 않다는 전제 하에 학설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유가 철학과 아렌트의 정치 철학

아렌트의 정치 철학을 유가 철학에 적용해보면 몇 가지 비판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유가 사상은 공통적으로 도덕과 정치의 일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주(周)나라의 질서 잡힌 문물을 본받자고 주장한 공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문제의식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질서의 회복을 위해 공자가 제안한 방법은 역지사지의 태도인 인(仁)을 바탕으로 도덕적 행동 규범인 의(義)를 도출하여 정치적 행동 양식인 예(禮)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특히 직(直) 개념을 살펴보면, 공자가 내면적 동기와 외면적 행위의 일치를 요구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정치적으로도 좋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공자는 정치적 행위를 논할 때 필연적으로 위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위선은 행위에 대한 정치적 미덕과 도덕적 미덕이 서로 같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논어》에서 섭공이 제시했던 아비의 도둑질을 고발한 아들의 사례는 이러한 딜레마를 선명하게 지적한다. 공자는 아들로 하여금 아비를 고발하지 않을 것을 긍정하지만, 이것은 범죄를 숨겨주는 꼴이 되므로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정치적으로 권장되지 않는 행위이다. 반대로 아비의 범죄를 고발한다고 하더라도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도덕적 원칙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결코 도덕적 행동이라 옹호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현상은 이미 아렌트가 지적한 바 있다. 정치와 도덕을 결합했을 때 인간은 정치적으로 실패하고 도덕적으로도 타락하기 때문이다. 도덕은 공적인 정치 영역에 드러낼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감출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동기를 찾으려는 것, 즉 모든 이가 공공에 그 내밀한 동기를 드러내야 한다는 요구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자를 위선자로 바꿔버린다. 동기를 드러내는 순간, 위선이 모든 인간 관계를 오염시키기 시작한다.”(On Revolution. p.98)

한편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므로 그 고유한 성질인 사단(四端)을 자각하여 키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인(聖人)은 자신의 도덕적 잠재성을 가장 많이 현실화한 사람으로서 자연히 민의(民義)를 얻게 되며 지배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요컨대 맹자의 정치 사상은 정치적 권력이 도덕적 권위로부터 발현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맹자는 민심과 천명(天命)을 동일시함으로써 인간사의 영역을 초월한 권력의 원천을 주장한다. 맹자는 만장과 함께 요순의 정권 이양에 대해 논하면서 왕위는 “하늘이 주었다”고 평한다. 이어 “하늘은 말을 하지 않”으며 “행위와 사업으로 보여줄 뿐”이라고 주장한다.(〈萬章上〉; 노사광, 『中國哲學史』, 1987. p.143에서 재인용)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행위의 권위가 인간사를 초월한 영역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 정치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렌트는 비판한다. “프랑스 혁명의 귀결은 헤겔 철학에서 역사의 근대적 개념이 탄생한 것이었다. […] 헤겔의 철학은, 행위와 인간사의 영역을 고민했음에도, 관조를 이루었다. 사유의 시선을 뒤로 돌리기 전, 정치적이었던 모든 것─행위, 말, 그리고 사건들─은, 18세기 혁명으로 도입된 새로운 세계가, 토크빌이 주장했듯이, 새로운 정치 과학이 아니라 역사 철학만 받았다는 결론과 함께, 역사적으로 됐다. […]”(On Revolution. pp.51-52) 아렌트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정치의 영역이 역사 이론의 필연성으로 대체됐다. 인간사의 영역을 초월한 역사이론은 다양한 개인이 말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서로 소통하는 관계가 아니라 지배-피지배 관계로 정치 행위를 전락시킨다. 맹자의 천명은 아렌트가 지적한 역사적 필연성과 유사하기 때문에, 맹자가 주장하는 정치는 지배 외에는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아렌트의 사상을 바탕으로 보면, 진정한 정치 행위는 복수의 사람이 모여 형성하는 공적 공간에서 말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행위이다. 정치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역사법칙이나 하늘의 의지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인간 복수성의 조건 아래 놓인 권력은 결코 전능한 힘에 도달할 수 없고, 인간 권력에 근거하는 법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On Revolution. p.39) 그러므로 정치는 지배-피지배 관계가 아니라 평등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정치활동 즉 이소노미아(isonomy)이다. “비지배에 대한 생각은 이소노미아라는 단어로 표현됐는데, [여러] 정체들 중에서 그 탁월한 속성은 고대인들이 열거했듯이 지배의 개념(독재정이나 과두정의 지배ἄρχειν나 민주정의 명령κράτειν)이 전혀 부재했다는 것이었다.”(On Revolution. p.30) 그러나 맹자의 정치 철학은 때때로 혼란스럽다. 비록 맹자가 민심이 곧 하늘의 뜻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사의 영역에 정치를 포섭하고자 하기도 했지만, 정권의 이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초월적인 권원을 인정하여 결국 정치가 인간사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늘이 현명한 이에게 주고 싶으면 현명한 이에게 주고, 하늘이 아들에게 주고 싶으면 아들에게 준다. […] 그 아들이 똑똑하고, 못난 것은 모두 하늘[때문]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상동〉; 『中國哲學史』, p.144에서 재인용) 천자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와 엄격한 계급사회를 바탕으로 형성된 당대 중국의 정치문화를 고려할 때 맹자의 민본 사상이 독창적이며 선진적이었다고 옹호하더라도, 지배로서 정치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아렌트의 비판을 면할 수는 없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맹자의 학설을 반박했다. 순자의 본성 개념은 가치를 자각하여 도출된 인간의 속성이 아니라 본능적 욕구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맹자의 본성 개념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할 때, 순자가 맹자보다 인간을 좀 더 비관적으로 혹은 좀 더 현실적으로 해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맹자가 공도자와 함께 대인과 소인에 대해 논한 대화에서 보듯이, 맹자의 학설은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한 나머지 도덕적이지 않은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유심론적인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감각에 가려 옳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물과 타인으로 이루어진 외부 세계를 거부하고 내면의 영역으로 침잠하도록 이끈다. 반면 순자는 인간의 욕구를 인위적 제도로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비도덕적 인간도 자신의 사상체계 안에 포섭하는 한편 인위적 세계를 긍정했다. “마음이 생각하고, 능력이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일러 인위(人爲)라고 한다”(〈정명편〉; 『中國哲學史』. p.336에서 재인용)이러한 사상은 근대의 주체성 사상과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자는, 맹자를 극복하여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하는 구도를 개혁하기보다, 오히려 다시 도덕을 정치 영역에 결부시킴으로써 인간사의 영역을 부정하는 구도에 빠져들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순자가 사회의 기원을 설명할 때 홉스의 투쟁적 자연상태와 유사한 가설을 제시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왜냐하면 근대적 합리주의 역시 도덕과 정치의 결합을 추구했으며, 특히 홉스가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강조하여 공공 권력이 부재한 경우 인간은 모든 사람에 대한 전쟁 상태에 빠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Thomas Hobbes, Leviathan, pp.77-78) 이러한 관점에서는 결국 모든 국민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독점 권력을 옹호하게 되므로 모든 정치 행위가 지배-피지배 관계 안으로 전락한다. 맹자의 한계가 순자에게도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한비자의 법가 사상에서 정치와 도덕의 관계

요컨대 공자로부터 순자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국의 유가 사상은 정치적 영역에 도덕적인 가치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비정치적인 양심을 옹호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적 태도는 도덕성과 정치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마주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도덕은 개인 내면에서 작동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으로서 주로 하나 속의 둘(two-in-one)로서 존재하는 나와 나 자신의 대화인 사유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정치는 복수적인 인간 사이에서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말과 행위를 나누는 말하자면 외면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Crises of the Republic, 1972. pp.60-62)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비자는 중국철학사에서 독특한 사상의 원류를 이루었다. 왜냐하면 한비자는 도덕과 정치의 구분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무릇 눈물을 흘리며 형을 집행하지 못하는 것은 인(仁)이고, 형을 집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法)이다. 선왕이 법을 우선하고 눈물에 따르지 않은 것은 인으로는 [백성을] 다스림으로 삼을 수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韓非, 『한비자』, 2016. pp.875-876) 한비자는 이전에 법(法), 술(術), 세(勢)의 세 파로 나뉜 법가사상을 종합하여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 철학을 전개했다. 그중에서 특히 법 개념은 약속과 처벌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군신 간에] 말이 이미 오가고 나면 그 계를 간직하며, 일이 진척되고 나면 부절을 나누어 쥐고 있어야 한다. 증표나 부절이 부합되는 바가 상과 벌이 생겨나는 곳이기 때문이다.”(『한비자』. p.92) 도덕과 정치를 구분하자는 기획은 당대 중국의 철학에서는 보기 어려운 통찰이었으므로, 약 1,700여 년 이후 이탈리아의 사상가 마키아벨리와 연관지어 한비자를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지점에서 아렌트와 한비자의 정치 사상에 유사성이 드러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렌트는 정치와 도덕의 구분을 주장했다. 선행이 공적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렌트는 ‘선하지 않게 되는 법’을 가르친 마키아벨리를 높게 평가한다.(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1958. p.77)

아렌트에게 약속과 용서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행위가 인간사의 중요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점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아주 취약한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The Human Condition. p.233) 행위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은 약속함으로써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안정성을 부여하고, 용서함으로써 되돌릴 수 없는 복수의 연쇄를 끝맺음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The Human Condition. pp.236-247) 이때 처벌은 용서의 대체물로 기능한다. 용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활동이지만 처벌은 공동체 안의 약속인 법을 통해 공동행위로 수행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적 행위는 도덕적 가치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 행위를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정치 행위 그 자체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렌트 사상에서 정치 행위를 판단할 수 있는 덕목은 세 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첫째로 행위자의 인간됨을 드러낸다는 덕이고, 둘째로는 서로 생각을 나눔으로써 세계의 객관성과 실재성을 보장한다는 덕이며, 마지막으로 변화를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행위가 초래할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공동체를 유지하여 정치적 행위의 지속적인 실현을 가능케 하는 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비자의 법가 사상은 세 가지 덕목 중 셋째 덕목을 긍정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유가 사상은 개인의 도덕성을 정치 영역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덕목 중 첫째 덕목을 만족하기 때문에 법가 사상과 유사한 수준으로 정치적 평가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세 가지 덕목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셋째 덕목이다. 비록 한비자의 사상에서 분투와 소통의 정치 행위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도덕과 정치를 엄격하게 분리함으로써 위선과 지배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다. 반면, 유가 사상은 사람의 됨됨이(who-ness)를 공적 영역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견 정치적인 덕목을 갖추고는 있으나, 위선의 딜레마와 선의 지배로부터 정치 영역이 파괴될 위기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중국 고대 철학의 네 가지 흐름과 유가 철학에서 정치 사상, 그리고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아렌트의 정치 철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아렌트의 정치 사상은 인위적 세계를 긍정하고 정치의 사회화를 경계했기 때문에 도가나 묵가의 사상과는 현저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유가 철학은 공통적으로 정치를 도덕과 결부시켜 이해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따라서 공자에게는 위선의 문제가, 맹자와 순자에게는 지배-피지배 관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한비자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함으로써 위선과 지배의 난제를 해결할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따라서 한비자의 법가 사상은 아렌트의 정치 철학과 상당히 유사한 지점을 보인다.

그러나 한비자와 아렌트를 일대일 대응 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한 태도이다. 아렌트는 행위의 기본을 말과 행위로 보았으므로 그 말과 행위가 지속적으로 드러나야 바람직한 반면, 한비자는 최초에 법 체계를 온전히 형성하기만 하면 그 이후부터는 마치 도가의 무위와도 같이 말이 필요 없는 수준으로 자연스레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군주의 도리는 고요히 물러나 있는 겸허한 태도를 귀중한 보배로 삼는다. […] 이 때문에 [군주가] 말을 하지 않아도 [신하는] [군주의 의도를 잘 파악하여] 잘 대답하며, [군주가] 약속을 하지 않아도 일이 잘 진척된다.”(『한비자』. p.92) 이와 더불어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했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적 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아렌트의 시각과는 다르게, 한비자는 엄격한 군신 관계를 기반으로 왕권을 공고히 하여 지배-피지배 관계가 위태롭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도덕과 정치를 엄격하게 구분했음에도 한비자가 정치를 지배의 일종으로 대한 것은 그 시대적,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내재된 한계로 보인다.

고대 중국의 한비자의 사상을 현대 미국의 아렌트적 시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갖는 한계는 그 시공간적 거리가 매우 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상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휘발적인 인간의 행위를 인간사의 영역에 영원히 남기기 위함이다.(The Human Condition. p.197) 오직 이야기만이 유한한 인간에게 불멸의 영광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Arendt, Hannah. Crises of the Republic.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2.
Arendt, Hannah. On Violence.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1970.
Arendt, Hannah. The Human Condi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8.
Hobbes, Thomas. Leviathan. McMaster University Archive of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1998. ProQuest Ebook Central, http://ebookcentral.proquest.com.ssl.openlink.ssu.ac.kr:8080/lib/ssu/detail.action?docID=3117726.
노사광. 『중국철학사(中國哲學史)』. 정인재 역. 탐구당(探求堂). 1987.
한비(韓非). 『한비자』. 김원중 역. 휴머니스트(Humanis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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