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2장-2 (사회의 폭정)

삶과 활동의 관계

이 글은 “The Human Condition (Hannah Arendt, 2nd E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와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저, 이진우 역, 한길사)”을 읽고 제 나름대로 요약한 글입니다.


Ⅱ.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The Public and the Private Realm

고대 그리스에서, 공적 영역은 복수적 인간이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의 실재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사적 영역은 공적 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근대 대중 사회가 등장해 다양한 관점이 사라지고 소유가 부의 축적으로 오해됨에 따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모두 파괴되었다. 끊임없이 자기확장적인 사회의 부는 세계를 망가뜨리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7. 공적 영역: 공적인 것 The Public Realm: the Common

[공적인 것의 실재성 reality of the public]
1 ‘공적’이라는 단어에는 [(1) 가장 넓은 공공성으로 모두에게 시청각적으로 현현한다는 현상과 (2) 사적 공간과 구분되는 공유된 세계 그 자체라는 현상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2 첫째 의미에서, 같은 것을 보고 듣는 타자의 현존은 세계와 우리 자신의 실재를 확신할 수 있게 한다. 3 신체적 고통, 특히 죽음은 개인적이며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 4 실재감(feeling of reality)은 현현에 의존하므로 공적 영역은 사물을 드러내는 영역이지만, 사랑과 같이 무세계적인 것들은 오히려 사적 영역에서만 드러난다. 5 근대의 ‘작은 행복’은 매력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기도 하지만 공적 영역을 구성하지는 못한다.

[공적인 것의 세계성 worldliness of the public]
6 ‘공적’이 지닌 둘째 의미에서, 세계는 지구나 자연이 아니라 함께 사는 공공의 세계로서 ‘사이’에서 인간을 연관지으며 동시에 분리한다. 7 세계 즉 공적 영역이 사라지면서 인간은 사물을 통해 연결되지도 분리되지도 않게 됐다. 8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세계를 형제애(brotherhood)와 사랑(charity)으로 대체하고자 시도하여 무세계적이었다. 9 무세계성은 세계가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즉 사물이 제작자만큼 가멸적(mortal)이라는 확신에 기반하므로, 세계는 지속성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10 공적 영역과 세계가 지닌 지속성은 인간의 사멸성을 초월한다. 11 그리스인들의 폴리스(polis)는 로마인들의 공화국(res publica)처럼 삶의 무상함을 극복하도록 보장한 지속적 공간이었다.

[근대 사회에서 파괴된 공적 영역 the undermined public in a modern society]
12 근대 사회에 이르러 공적 존경이 금전적 보상과 같이 소모될 수 있는 무상한 것으로 이해되면서, 공적 영역의 지속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금전적 보상이 더 ‘사물적’인 것으로 이해됐다. 13 사물성(객관성, objectivity)은, 사물이 그 정체성은 변화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이고 들릴 때 보장되며, 세계적 실재는 참되고 믿을만 한 것으로 드러난다. 14 실재는 공공적 본성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복수성에 따른 다양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객관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대중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적 영역에 갇혀 타인을 보고 듣는 능력을 박탈당하고 단 하나의 관점에 주관성에 갇히므로 공공 영역이 사라지게 된다.

“The common world is what we enter when we are born and what we leave behind when we die.” (55)

8. 사적 영역: 소유 The Private Realm: Property

[사적인 것의 의미변화 the change of the meaning of the private]
1 사적인 삶은 실재성과 객관적 관계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것이 박탈당한 삶이다. 2 근대 사회에서 실재성과 객관적 관계의 박탈은 외로움으로 나타났고, 사회는 세계라는 공적 영역과 집이라는 사적 영역을 동시에 파괴했다. 3 박탈된 것이라는 사생활의 사적 특징은 기독교의 발흥으로 약화됐으며, 근대에 이르러 공적 영역이 소멸되어 정부는 국가적 ‘가정관리’로 변했다.

[사적 영역과 소유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rivate realm and private property]
4 공적 영역이 파괴되고 사적 영역도 사라짐에 따라 소유와 관련된 사적 의미도 사라졌다. 5 소유와 부(wealth)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6 근대 이전, 소유는 세계 속에 위치를 갖는다는 신성한 것이자 정치적인 것의 이면으로 이해됐다. 7 법은 단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정치적 행위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8 사적 영역은 인간이 공적 영역에서 실존을 드러내기 위한 조건으로 간주됐다.

[근대 사회에서 부와 사적 소유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wealth and private property in a modern society]
9 고대의 사적 영역은 삶의 필요와 동일한 영역이어서, 자유민이라도 사생활을 중시하면 가난에 예속된 것으로 간주됐고, 사적 소유(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삶의 필요에서 해방된 것으로 간주됐다. 10 소유자가 정치적 삶 대신 재산을 늘리기로 선택하는 경우 필연성의 노예로 간주됐다. 11 근대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를 부를 축적하기 위한 희생물로 보아 공적 영역이 파괴되었으며, 사생활은 영원히 증가하는 사회적 부의 축적 과정 즉 생산성을 저해시키는 요소로 이해됐다.

“The law originally was identified with this boundary line, which in ancient times was still actually a space, a kind of no man’s land between the private and the public, sheltering and protecting both realms while, at the same time, separating them from each other.” (63)

9. 사회적인 것과 사적인 것 The Social and the Private

[사회적인 것과 세계의 관계 a relationship between the social and a world]
1 사회적인 것은 사적 소유에 대한 사적 배려(private care)가 공적 심려(public concern)로 옮겨간 것으로, 더 많은 부(wealth)의 축적을 보호하기 위한 연방(the commonwealth)의 형태로 나타났다. 2 공공의 부(common wealth)가 공적 영역을 축소시키자 축적 과정(process) 그 자체인 자본은 세계의 지속성과 안정적인 구조(structure)를 훼손했다. 3 정부가 부의 축적 경쟁을 공공적으로 중재하는 기능으로 전락한 사회는 그러므로 결코 세계가 될 수 없다.

[사적 특성을 잃는 근대적 사생활 a modern privacy without private properties]
4 대체물(fungible)이 소비물(consumption)로 변화되면서 근대적 개념은 세계 속 고정된 장소를 잃고 노동력 즉 자기 몸의 소유만이 확고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외적 세계로부터 개인 안으로 천착하려는 경향, 즉 사적 영역으로 보호받던 사생활(privacy)이 친밀성(intimacy)으로 이해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5 따라서 사적 소유는 손에 닿는(tangible) 속성, 다시 말해 세계 속에 위치한다는 속성을 잃는다. 6 공적 세계와 달리 사적 소유는 필연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근대적 의미에서 사적 소유와 공적 영역 a private property in a modern sense and the public realm]
7 사적 소유는 소유자가 공적 영역으로부터 ‘어두운’ 친밀성의 영역으로 숨어 타인에게 보이고 들리는 공공성을 잃도록 한다. 8 이에 따라 사람들은 정부가 외부 세계로부터 사적 소유를 보호는 경계를 만들어 부의 축적을 보호하도록 요구한다. 이에 대항한 마르크스의 전략은 사적 소유를 없애 사적 영역 전체를 시들게 만드는(withering away) 것이었다. 9 근대 사회는 ‘밝은’ 공적 영역과 ‘어두운’ 사적 영역의 이분법을 없애고 모든 노동자를 ‘어두운’ 영역으로 밀어넣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When this common wealth, the result of activities formerly banished to the privacy of the households, was permitted to take over the public realm, private possessions─which are essentially much less permanent and much more vulnerable to the mortality of their owners than the common world, which always grows out of the past and is intended to last for future generations─began to undermine the durability of the world.” (69)
“This[the practical treatments], however, did not make them[men] protect the activities in the private realm directly, but rather the boundaries separating the privately owned from other parts of the world, most of all from the common world itself.” (71)
“What is important to the public realm, however, is not the more or less enterprising spirit of private businessmen but the fences the houses and gardens of citizens.” (72)

10. 인간 활동의 위치 The Location of Human Activities

[선의 위치 the location of goodness]
1 사적인 것을 숨겨야 할 것으로, 공적인 것을 드러내야 할 것으로 여긴 것과 마찬가지로, 활동적 삶을 구성하는 활동들에는 그에 맞는 각각의 위치(location)가 있다. 2 그리스-로마의 탁월성은 기독교 내세성(otherworldliness)으로 인해 선(goodness)으로 대체되었다. 3 선은 공공성으로부터 스스로를 감추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외부로 알려지는 순간 선이 아니게 된다.

[선 사랑과 지혜 사랑 the love of goodness and of wisdom]
4 인간이 결코 선하게 될 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선하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예수의 선 사랑은 소크라테스의 지혜 사랑과 유사하다. 5 인간이 선하게/지혜롭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선/지혜 사랑은 스스로를 무효화하고 터무니없게 된다. 6 선 사랑과 지혜 사랑의 차이점은, 나와 나 자신의 고독한(solitary) 대화인 지혜 사랑 즉 사유는 스스로 숨길 필요가 없지만, 선 사랑은 스스로 결코 드러나지 않게 숨긴다는 점이다. 7 고독한 지혜 사랑은 타인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외로운 선 사랑은 결코 타인을 가질 수 없으므로 무세계적이다.

[공적 세계에서 선과 악 good and evil in a common world]
8 선한 일(good works)에 내재된 무세계성은 세계라는 공간을 부정하며, 그로 인한 외로움은 인간의 조건인 복수성에 모순되게 만든다. 9 마키아벨리의 생각처럼, 선이 세계에 등장하면 그 자신과 주변이 타락하고 세계를 점차 파괴한다. 반면 악은 공적 세계를 즉시 파괴하고 권력(power)을 얻는다. 10 정치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통해 삶의 활동 중에서 어떤 활동이 공적 공간에 드러나야 하는지, 사적 공간에 숨겨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Hannah Arendt - Google Doodle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 10. 14. Hanover, Germany – 1975. 12. 4. New York, USA

유대계 혈통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후설과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당대 명사에게 수학하고 1929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치 정부의 박해를 피해 1933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목격했다. 1941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뉴스쿨, 시카고 등 다양한 학교에서 정치 사상을 강의했다. 대표작으로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 『혁명론』 (1963), 『정신의 삶』(1978, 유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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