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어, 프레드, 『다른 하이데거』, 신충식 역, 문학과지성사, 2011.
내용 요약
근대적 맥락에서 오해된 하이데거 철학을, 현대적 맥락에서 새로 읽어야 한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부역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하이데거 철학 전체를 파시스트적이라 매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현존재’를 ‘세계-내-존재’로 이해했던 하이데거 철학이 갖는 새로운 정치적 지평을 이해해야 한다. 하이데거에 대한 달마이어의 독특한 독법은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구분으로부터, 민주주의, 집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다.
제1장 하이데거와 정치학: 몇 가지 교훈
하이데거는 그 정치적 대실수로 인해 오해받음으로써 그의 사상이 갖는 독창성이 은폐되어 있다. 세계-내-존재 개념을 통해 경험의 세계성을 포착한 것이나, 현존재 개념을 통해 관념론적 정신을 극복하고자 시도한 것은 충분히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
제2장 정치적인 것의 제고: 하이데거의 기여
하이데거의 독특한 현존재 및 세계 개념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유아론적, 고립적 주체의 틀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내-존재로서 본래적으로 세계와 타인을 수반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cogito적 자아가 요청하는 수학적 명증성의 자아나, 민족주의와 집단주의는 극복된다. 현존재는 서로의 자유를 돕는 초연함을 요청하며, 초연함은 인간을 닦달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되 의존하지 않음’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세계관은 세계를 지키고 유지하며, 계획하지 않되 기다리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제4장 하이데거의 윤리와 정의
견해와 인용
제1장 하이데거와 정치학: 몇 가지 교훈
“하이데거의 저작은 분명 어떤 관습적인 (또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루는) 의미에서 정치이론은 아니다. […] 하지만 같은 이유로 그의 저작은 순수 사변적인 묵상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저작에서 “세계-내-존재”와 인간 경험의 세계성을 (여기서 “세계”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세계”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계속 궁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강조한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50-51)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정치적 함의를 살펴볼 수 있는 부분. 세계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정치적 논의로 귀결되는가? 그럴 수밖에. 관념론은 세계보다 정신에 우위를 두었지만, 세계를 긍정한다면 타인을 긍정하게 되고, 결국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를 논할 수밖에 없기 때문.]
제2장 정치적인 것의 제고: 하이데거의 기여
“이것은 진정한 공동존재에서 관여(Sicheinlassen)의 차원을 놓치고 있는 해석이다. 심지어 “훨씬 상세하게 논의되는” 이른바 “나-너”와 “우리” 관계의 개념조차도 그 개념이 “여전히 주로 고립된 자아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불완전하며 불확실한 토대에 놓여 있다고 이야기한다. […] 현존재가 세계-내-존재임을 고려할 때, 누군가 더불어 존재는 필연적으로 세계-내-공동존재를 의미하거나 함축한다. 그러나 그러한 공동존재는 현존재와 또 다른 주체 또는 타자적 자아와의 관계와 연관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서” 공동 배치(a joint placement) 또는 “거기 있음”의 영역과 결부된다. 현존재의 공동성은 또한 언어가 의사소통이나 정보 교환의 단순한 매개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문화와 언어의 공유된 특성 안에서 명백하다.” (114-115)
[Heidegger, Zollikoner Seminare, pp. 144-145, 151, 183 참조. 데카르트로부터 기원한 코기토적 주체에 따른 나-너 관계 비판. 공동존재는 확립되고 고립된 주체 개념으로부터 출발한 게 아님. 애초부터 현존재는 관계적 존재. 언어는 데카르트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단순한 매개가 아님. 각주에서 “언어는 본래적 존재계시”라고 하는 부분 확인 필요.]
제4장 하이데거 윤리와 정의
“하이데거 저작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 형평의 요구는 단순의 의도적인 주장이 아니라, 존재 틈새(Seinsfuge)와 그것의 현전과 부재 연관에서 나온 결과이다. 따라서 합법성이란 주어진 규칙에 대한 복종의 의미에서 적법성을 의미할 뿐 아니라, 형평성에 대한 주의너 접합과 탈접합에 대한 숙고를 의미한다. […] “노모스(nomos)는 단순히 ‘법’이 아니라 본래적 의미로 존재사건에 잠재하는 시여이다.” 이러한 시여만이 “인간들을 존재로 ‘접합할’ 수 있으며 그러한 ‘접합’만이 (인간들을) 구속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법이나 적법은 인간적 합리성의 음모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222)
[Heidegger, “Letter on Humanism” (1947) 참조. 세계-내-존재로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접합하는 법. 인간은 단순히 법에 복종하지 않고 형평성을 이야기한다. 형평성에 따라 함께할지, 돌아설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Fred Dallmayr, “Hermeneutics and the Rule of Law” 참조. 권리에 대해서는 Ronald Dworkin, Taking Rights Seriously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