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2장-1 (가정과 세계의 경계)

삶과 활동의 관계

이 글은 “The Human Condition (Hannah Arendt, 2nd E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와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저, 이진우 역, 한길사)”을 읽고 제 나름대로 요약한 글입니다.


Ⅱ.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The Public and the Private Realm

로마 이후 정치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으로 이해됐다. 사적 영역은 삶의 필연성에 예속된 사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영역으로, 공적 영역은 자유를 추구하며 정치적 행위를 수행하는 영역으로 엄격히 구분됐다. ‘공적 영역에서 사적 활동을 수행’하는 근대 사회에서, 인간은 노동 이외에 공적 행위를 할 수 없어 평준화되고 탁월성을 획득할 수 없게 된다.

4. 인간: 사회적 또는 정치적 동물 Man: a Social or a Political Animal

[인간에 대한 정의와 정치적 행위 the definition of human and the political action]
1 다른 사람과 사물로 이루어진 세계는 활동적 삶의 조건이다. 2 그중에서 행위는 특히 다른 사람의 존재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3 역사적으로 행위는 ‘함께함'(being together)과 밀접하게 이해됐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에 대한 세네카의 번역어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is)의 사회(societatis)는 생존을 위한 동물적 연대를 의미했다. 4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출현과 함께, 시민들은 소유한 것(idion)과 공유한 것(koinon)으로 삶을 구분했다. 5 정치적 삶(bios politikos)은 행위(praxis)와 말(lexis)이 구성했다. 6 위대한 업적은 행위와 말로서만 이룰 수 있었고, 그 무게중심은 점차 행위에서 말로 옮겨갔다. 정치는 말을 통한 설득으로 이루어졌고, 폭력은 전정치적(prepolitical) 행위로서 폴리스가 아닌 가정에서 가장이 사용하는 수단이었다. 7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의한 두 가지, 즉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과 말할 수 있는 동물(zoon logon ekhon)은 동물적 연대를 의미하는 사회가 아니라 정치적 공동체인 폴리스에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8 로마에 이르러 ‘정치적’은 ‘사회적’으로, ‘언어사용능력’은 ‘이성’으로 대체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가정의 지배가 폭군의 지배보다 완벽(perfect)하다고 여겼으나, 로마에서는 정치적인 지배를 가정의 지배보다 더욱 완벽한 것으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정치를 지배의 활동으로 이해한 것이다.

5. 폴리스와 가정 The Polis and the Household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적 장소와 전정치적 장소 the locations of the political and the prepolitical in ancient Greek]
1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동일시하는 태도는 로마-기독교 사상과 근대 국민국가의 출현에 관계가 깊다. 2 사회적인 것은 공공 세계(a common world)와 연관이 있으면서도 삶의 유지(the maintenance of life)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서, 행정적이며 집합적인 살림(administration of or collective housekeeping)이다. 3 고대 그리스에서 장소(location)를 제공하는 집의 소유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기능했다. (땅의 소출은 공동으로 소비했음에도 땅 그 자체에 대한 소유권은 엄격히 인정했다.) 4 생존을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는 가정영역의 원동력은 필요와 욕구이다. 5 반면 폴리스는 생존의 필요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영역이다. 따라서 사회(society)에서 정치적 권위와 폭력은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6 가정영역에서 생존의 필요에 벗어나기 위한 전정치적 폭력을 정당화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행복(eudaimonia, felicity)은 필요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7 이와 같은 폭력은 17세기에 이르러 정치적 영역에서도 필요한 것으로 인정됐다. 8 폴리스는 평등의 공간으로서 생존의 필요나 타인으로부터 지배받지도 그들을 지배하지도 않는 자유의 공간이었던 반면, 가정은 불평등의 공간이었고 폴리스의 평등은 다수의 불평등한 존재를 전제했다.

[중세 기독교로부터 사회적 영역 the social realm from medieval Christianity]
9 근대 세계에서 정치는 사회의 기능 정도로 이해되어, 공적 영역에서의 경제적 활동 또는 가정영역에 대한 집합적 심려(collective concern)이 곧 사회적 영역이 되었다. 10 로마 몰락 이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구분은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사이의 구분으로 대체되고, 인간의 모든 활동은 가정 영역으로 흡수되었다. 11 중세 시대의 공공선(common good)은 정치적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영역에서 공공의 관심(interests in common)을 의미할 뿐이었다. 12 따라서 중세의 정치철학은 사적 관심을 억제하는 용기의 미덕을 중시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마키아벨리(Machiavelli)이다. 13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사적 영역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다. 13 정치 영역에서는 삶을 위한 활동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막스 베버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를 ‘연금 국가'(pensionopolis)로 일컫기도 했다. 14 이런 엄격성은 실제 정치적 경험이었다기보다, 삶의 예속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희망에 따른 것이었다.

6. 사회의 발흥 The Rise of the Social

[고대의 사생활과 근대의 친밀성 privacy in ancient era and intimacy in modern times]
1 사회의 등장으로 인해 사적인(idion) 것을, 어리석은(idiotic) 것으로 이해했던 고대 그리스와 달리, 후기 로마부터는 공적 삶으로부터 잠시 도피한 친밀한(intimacy) 것으로 이해했다. 2 고대 그리스에서 사생활(privacy)은 공적으로 박탈된 것(deprived)으로 구별한 반면, 근대적 사생활은 사회적인 것과 대립된 것으로 이해됐다. 3 루소가 제기한 친밀성은 사회의 침범에 대항한 개인의 심리적 영역으로서, 사적 영역만큼 세계 속에 실질적인 위치를 갖거나 공적 영역만큼 사회적 영역과 대립하는 위치적 확실성을 갖지도 않았다. 4 루소와 낭만주의는, 가장 앞에 평등한 가정 구성원과 같이 사회 구성원을 평준화시키는 근대 사회의 순응주의(conformism)에 대해 반항했다. 5 가정 영역에서 가장의 독재는 사회에서 관료제(bureaucracy)의 비인격적(nobody) 폭정(tyranny)으로 변형되었다.

[근대 사회에서 행동과 순응주의, 그리고 사회과학 behaviors, conformism and social science in the modern society]
6 사회는 구성원을 평준화(normalize)하여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구성원을 동등하게 통치하는 대중사회(mass society)에서는 사회가 정치적 영역을 대체했고 구별과 차이(distinction and difference)는 사적인 것으로 변했다. 7 순응주의에 기초한 근대의 평등성(equality)에서는 행동(behavior)이 행위를 대체한 반면, 고대 그리스의 평등(homoioi)은 개인의 불가교환성(unexchangeability)을 드러내어 동료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인정받는 업적(unique deeds or achievements)로 나타났다. 8 인간은 행동하되 행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근대 과학의 통계적 접근에 바탕을 두었다. 9 통계의 법칙은 표본의 수가 많아지거나 조사 기간이 오래될수록 들어맞았으며, 행위나 사건(events)은 일탈(deviation)이나 동요(fluctuation)로 이해됐다. 10 인구가 증가할수록 돌연변이가 줄어 통계법칙은 완벽해지기 때문에, 공적 영역은 점차 정치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대체된다. 11 인구가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행위하기보다 행동하며 사건은 역사적 중요성을 잃는다.

[관료제와 인간성 상실 bureaucracy and the loss of humanity]
12 공산주의 사회는 마르크스 이전의 국가적 가정(a national household)과 국민국가의 독재적 구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었다. 13 ‘보이지 않는 손’, 즉 비인격적 작용으로 통치되는 사회는 공산주의적 특성을 지녔으므로, 혁명을 통해 자유의 영역을 획득한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은 틀렸다. 14 행위를 대체한 행동과 마찬가지로, 인격적 지배는 사회과학, 즉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s)에 따른 비인격적 지배(the rule of nobody)인 관료제로 대체됐다. 15 끊임없이 다른 영역을 침범하며 성장하는 사회적 영역에서, 인간은 진정한 인간존재(human being)로 이해되지 않고 단지 인류적 단일함(the one-ness of man-kind)을 가진 존재로 이해되어, 인간성(humanity)을 상실할 위기에 놓인다.

[사회의 성장과 노동 및 행위의 상실 the growth of society, and the loss of labor and action]
16 사회는 생존을 위한 상호 의존관계가 공적 영역에 드러난 것일 뿐, 어떤 공적 중요성도 담지하지 못한다. 17 노동은 본래 사적 영역에서 수행되어 순환적 특성을 지니지만, 공적 영역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신속한 발전 과정(a swiftly progressing development)의 특성을 나타내어 세계를 변화시켰다. 18 사회적 영역에서 노동은 유기체적 삶의 결과물인 부패(decay)를 극복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것의 비자연적인 성장(an unnatural growth)으로 이해된다. 19 분업으로 대표되는 공적 노동은 생산성의 지속적 성장을 의미하며, 노동의 본래 의미를 잃고 삶의 지속에만 매달리게 하여 탁월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20 공적 노동은 행동과 말을 사적 영역이나 친밀성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서 탁월성(arete, virtus)을 얻을 수 없게 된다.


Hannah Arendt - Google Doodle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 10. 14. Hanover, Germany – 1975. 12. 4. New York, USA

유대계 혈통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후설과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당대 명사에게 수학하고 1929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치 정부의 박해를 피해 1933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목격했다. 1941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뉴스쿨, 시카고 등 다양한 학교에서 정치 사상을 강의했다. 대표작으로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 『혁명론』 (1963), 『정신의 삶』(1978, 유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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