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과학적 언어와 일상적 언어의 정치적 의미 – 아렌트와 가다머를 중심으로」, 『사회와 철학』, 제8호, 2004, 283-309.
내용 요약
아렌트의 판단력 개념을 가다머의 ‘언어의 작용’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하는 논문.
아렌트와 가다머의 과학기술 비판
아렌트 정치판단이론에서 정치적 말(speech)과 과학적 언어(language)의 차이
정치와 과학은 서로 다른 인간관을 전제함: 지구에서 사유(thought)하는 복수적(plural) 인간(men)과 우주의 원리를 인지(cognition)하는 단수적(singular) 인간(Man). 말의 세계구성적 성질: 비교 불가능한 각자의 개성(who-ness)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조정함. 말은 정치적이지만 과학적 언어는 세계에 무관심해 무사유(thoughtlessness)로 귀결되므로 사회적임. 과학적 문제는 수학적 기호(symbol)를 통한 과학의 언어로 해소 가능하지만,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정치적 말로만 해소할 수 있음. 그러나 아렌트는 체계적인 언어철학을 전개하지 않아 해석학적 두 물음이 제기됨: ⑴ 말은 어떻게 세계를 구성하는가? ⑵ 어떻게 말을 통해 정치적 판단이 가능한가?
가다머의 해석학에서 일상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의 차이
언어는 공동체적 합의의 산물이자, 합의 그 자체. 인간은 경험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언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함. 새로운 경험은 예전의 경험을 뒤집기도 가능하므로 언어의 의미는 무한히 확장됨. 과학적 언어는 일상적인 세계경험으로부터 멀어져(prescinding) 기술용어가 지칭하는 개념을 추상화(abstraction), 즉 다른 개념들을 사상(捨象, renunciation)하는 과정에서 형성됨. 과학적 언어는 용어와 개념의 일대일대응을 추구하기 때문에 애매성과 다의성을 가진 일상적 언어를 배제함.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는 일반인들이 기술용어를 사용하는 전문가에게 사회적 의사결정을 맡기는 경향이 증가하고 일반인은 그 결정과정에서 소외됨. 이에 따라 생활형식은 저급해지고 언어는 빈곤해짐. 이러한 문제는 해석학적 사유로 극복해야 함.
아렌트와 가다머의 비판이 지닌 공통점과 한계
아렌트와 가다머는 과학적 언어가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되는 현상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공통적. 그러나 아렌트에게는 정치판단이 해석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가다머에게는 언어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유의미한지 해명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보임.
아렌트 정치판단이론에 대한 해석학적 해명
아렌트 정치판단이론
아렌트의 정치는 서로 다른 복수적 인간이 말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합의함으로써 공동의 행위(action in concert)를 수행함을 의미. 인간사는 언제나 새로운 일이 발생하므로, 고정된 이론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공통감(sensus communis)에 근거한 판단을 통해 정치가 이루어짐. 판단은 우주적 보편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서로의 인간됨(humanness)을 확인할 때 정당성을 가짐. 여기서 다음의 문제들에 대한 해명이 필요: ⑴ 공통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⑵ 공통감은 어떻게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가? ⑶ 판단은 어떻게 소통되는가?
해명 ⑴: 공통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가다머에 따르면 언어는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합의한 산물이자 합의 그 자체이므로, 개인이 사용하는 언어에 공동체성이 내재되어 있음. 아렌트의 공통감과 가다머의 언어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근거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게 해석됨.
해명 ⑵: 공통감은 어떻게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가?
아렌트에 따르면 판단은 확장된 사고(enlarged thought)를 통해 가능한데, 이것은 가다머의 지평융해(Horizonverschmeltzung)와 일맥상통. 가다머는 인간이 토론를 통해 서로 융해된 지평을 확인하면 관념이 상호작용하고 무지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고, 바로 이때 판단이 가능하다고 주장.
해명 ⑶: 판단은 어떻게 소통되는가?
가다머에 따르면 언어가 대화를 주도하여 판단이 소통됨. 인간은 대화의 산물을 예상하지 못하고 단지 언어를 전달하는 수동적 기능을 수행. 가다머의 대화에서는 그 산물로 해석학적 진리(truth)가 산출되는데, 이 진리는 대화를 통해 산출되므로 아렌트의 진리-의견(opinion) 도식에서 오히려 의견에 해당.
해석학적 해명의 한계
가다머의 해석학에서는 인간이 정치적 주체성을 갖지 못하고 언어의 전달자라는 수동적 지위만을 갖는다는 한계를 가짐. 인간-인간 관계를 전제한 하버마스의 이론과 비교하면 텍스트-인간을 전제한 가다머의 수동성이 드러남. 그러나 아렌트-가다머-하버마스의 이론적 관계는 단순히 분석할 수 없으므로 유의해야 함.
견해와 인용
아렌트에서의 말의 정치적 의미
가다머의 언어 개념과 기술적 언어 비판
정치 판단과 언어의 작용
“공통감은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에 어울리게 해주는 별개의 감각”*이다. * 아렌트, 『칸트정치철학강의』, p.136.” (301)
[공통감에 대해 기술한 1차문헌.]
“정치적 판단성은 공동체를 초월하여 우주적인 차원에까지 그 보편적 타당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일차적으로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소통 가능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그 정당성이 확보되며, 나아가 한 공동체를 넘어서 지구상에 거주하는 인간들에까지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됨humanness”을 확인하는 근거가 된다.* * 김선욱,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 이론』, pp. 120~121 참조.” (301)
[공통감에 따른 정치적 판단이 우주적 보편성이 아니라 공동체적 소통가능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는 ‘인간됨’의 근거가 되는 거지? 위 서술만으로는 공통감과 인간됨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302-303)
[판단의 소통 가능성을 논의하다가 아렌트의 확장된 심성으로, 다시 가다머의 토론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공통감을 통해 판단이 형성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헤겔이 등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렌트의 ‘사고의 확장’ 개념이 대화와 의견의 교환을 통해 이루어지고, 가다머의 ‘지평 융해’도 토론과 대화를 통한 상호 연관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나, 아렌트에게서는 정치적 주체인 인간이 대화를 주도하고, 가다머에게는 인간이 아니라 개념과 관념들이 대화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던 건가?]
“대화를 수행하는 개인들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대화를 수행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언어가 대화를 이끌어간다. “대화를 수행한다는 말은 대화 참여자가 지향하는 주제에 의해 자신이 운영될 수 있도록 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다머는 말한다. 대화 가운데 하나의 지식이 갑자기 돌출한다. 대화의 결과로 어떤 것이 나타날지는 사전에 아무도 모른다. 대화 참가자는 대화의 산물을 경이롭게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대화를 이끄는 것은 언어이며, 이 대화에서 인간 주체는 수동적으로 기능할 뿐이다.” (304)
[가다머의 대화에서는, 인간이 그 대화의 결론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수동적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런데 가다머의 대화에서 아렌트의 행위의 불가예측성과 유사한 성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렌트의 행위에서도 역시 인간의 수동성이 강조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에머리히 코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