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활동의 관계
이 글은 “The Human Condition (Hannah Arendt, 2nd E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와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저, 이진우 역, 한길사)”을 읽고 제 나름대로 요약한 글입니다.

http://www.rene-magritte.com/human-condition/
Ⅰ.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
조건에 따라 활동하는 활동적 삶을, 인간은 산다. 서양 철학은 활동적 삶에 비해 관조적 삶을 중시하는 전통 아래 전개됐다. 인간은 활동적 삶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다.
1. 활동적 삶과 인간의 조건 Vita Activa and the Human Condition
[조건지워진 존재로서 인간 Human as a conditioned being]
1 인간은 조건에 따라 활동하는 삶을 산다. 2 생명(life)에 따른 노동(labor), 세계성(worldliness)에 따른 작업(work), 복수성(plurality)에 따른 행위(action)는, 인간적 조건에 따른 활동적 삶(vita activa)을 구성한다. 3 탄생성(natality)이라는 실존적 조건에 따라 활동적 삶은 개별적 인간의 삶과 죽음을 뛰어넘어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한다. 4 활동을 통해 인간이 사물세계를 창조하고, 사물세계는 다시 또 다른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인간은 조건지워진 존재(conditioned being)이다. 5 인간의 조건은 인간의 본질(nature)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6 인간의 인지능력은 스스로의 본질을 묻는 문제에 답할 수 없다. 7 인간의 실존적 조건(condition of existence)을 설명할 수 없다는 철학적 전통과는 반대로, 과학은 그 조건을 극복하려 시도한다.
2.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 The Term Vita Activa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의 대조 the contrast between vita activa and vita contemplativa]
1 활동적 삶(vita activa)은 철학자와 폴리스의 갈등과 더불어 공적-정치적 삶을 의미했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삶의 필연성에 자유롭게 선택할 삶을 세 종류로 구분했다: 육체적 쾌락의 삶, 폴리스에 헌신하는 삶, 관조하는 철학자의 삶. 3 중세 후기 이전까지 정치적 삶(bios politikos)을 구성하는 활동은 행위였다. 4 고대 이후 활동적 삶에 정치적 중요성이 사라지고,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만이 자유로운 삶으로 이해됐다. 5 활동적 삶에 대한 관조의 우위는 소크라테스 이후(theoria)부터 기독교(skhole)까지 이어졌다. 6 활동적 삶은 진리를 추구하는 관조를 방해하는 소요(askholia)로 이해됐다. 7 근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멸적인 인간의 활동적 삶은 영원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침묵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8 소크라테스 학파와 기독교의 전통은 활동적 삶을 관조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삶으로 간주했다. 9 관조적 삶이 지나치게 중시된 나머지 활동적 삶의 다양한 구분이 퇴색됐으며, 이러한 위계적 구분이라는 본질은 마르크스와 니체의 근대적 단절로도 바뀌지 않았다. 10 그러나 활동적 삶이 관조적 삶에 비해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아니다.
3. 영원성 대 불멸성 Eternity versus Immortality
[영원성과 대조되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으로서 불멸성 immortality as a human existent condition in contrast to eternality]
1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의 차이는 불멸성(immortality)과 영원성(eternity)의 차이로 나타난다. 2 불멸성은 자연이나 올림피아 신들과 같이 시간 안의 지속(endurance in time)으로서, 사멸하는 인간에게는 출산을 통해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종적 삶의 형태로 나타난다. 3 반면, 사멸성은 개별적 인간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 직선적으로 형성된 실존적 삶이다. 사멸적 인간은 불멸적인 작업이나 행위를 통해 불멸성을 얻는다.
[불멸성에 따른 활동과 영원성에 따른 활동 the activities for immortality and eternality]
4 관조하며 영원성을 추구하더라도 관조한 사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불멸성을 위한 활동이다. 5 불멸성을 추구하는 활동적 삶은 타인을 수반해 복수적(plural)이지만, 영원한 것에 대한 경험인 관조는 단수적(singular)이며, 말할 수 없고(arrheton, aneu logon) 활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죽음과 유사하다. 6 기독교의 부흥과 로마제국의 몰락 이후에 불멸성과 활동적 삶은 영원성과 관조적 삶을 위한 것으로 격하됐고, 근대에 이르러서도 불멸성의 지위는 회복되지 못했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 10. 14. Hanover, Germany – 1975. 12. 4. New York, USA
유대계 혈통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후설과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당대 명사에게 수학하고 1929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치 정부의 박해를 피해 1933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목격했다. 1941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뉴스쿨, 시카고 등 다양한 학교에서 정치 사상을 강의했다. 대표작으로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 『혁명론』 (1963), 『정신의 삶』(1978, 유고)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