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철학Ⅰ (3/6)] 엘레아 학파와 원자론자들

이 글은 “서양고대철학1(강철웅, 박희영, 이정호, 전헌상 외 저, 도서출판 길)”을 읽고 제 나름대로 요약 및 해석한 글입니다.

없던 것에서 있는 것으로,
생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제5장 엘레아 학파

이쯤에서 간단하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자 한다. 헤라클레이토스까지 진행된 철학적 논의는 이오니아 철학으로 명명할 수 있다. 이오니아 지역의 밀레토스 학파와 피타고라스 학파는 질료와 형상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다. 두 학파의 차이는 세상을 이루는 모든 현상의 근간에 대한 최초의 입장 차이였다. 말하자면, 밀레토스 학파는 눈에 보이는 사물 중에 하나를 골라 ‘그것이 만물을 이룬다’고 말하는 반면 피타고라스 학파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감각할 수 있었던 수의 비례나 음의 조화가 세상의 기본 원리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헤라클레이토스는 드러난 현상 이면의 원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르게 보이는 모든 것들은 사실 하나의 원리에 통합된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이오니아의 철학은 ‘변화(becoming)’의 철학이다.

그리스에서 이동한 철학의 중심지, 엘레아(Ἐλέα, Elea, 현재 이름은 로마시대 벨리아(Velia)로 변경됨)

엘레아 학파에 이르러 철학의 중심지는 이탈리아 남부로 이동한다. 이와 더불어 논의의 대상은 질료와 형상 중심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being)’가 된다. 엘레아의 현자들은 이오니아적 변화가 가능한지에 대해 따져묻는다. 음유시인 크세노파네스( Ξενοφάνης, Xenopanes, B.C. 570 ~ 480)는 호메로스적 신관을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부도덕하고 인간과 유사한 신은 사실 관습(nomos)일 뿐이고, 신의 실제 모습(physis)은 인간이 결코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아가 인격과 유사하게 다양한 신격을 지닌 신관을 비판하고 단일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하나다, 신은. 신들과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하며, 형체도 생각도 가사자들과 전혀 비슷하지 않다.” (B23) 그러나 크세노파네스는 여전히 이오니아 전통의 아르케까지 비판하는 데 이르지는 못한다. 물과 흙을 세상의 기원으로 주장하며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점은, 자연 현상을 단일한 아르케의 변화로 환원하지 않고, 독립된 두 아르케가 자기동일성을 유지한 채로 혼합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인간이 신과 같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못박으면서도, 시간을 갖고 탐구하다 보면 그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파르메니데스(Παρμενίδης, Parmenides, B.C. 510? ~ 450?)는 엘레아의 귀족으로, 입법가로서도 철학자로서도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에 대하여>라는 철학 시를 남겼다. 이 시는 크게 서시, 진리편, 의견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특히 진리편이 자연철학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 탐구의 어떤 길들만이 사유(noein)를 위해 있는지./ 그중 하나는 있다(estin)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 없다라는 길로서/ 설득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있지 않다(ouk esti)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밖에 없다라는 길로서/ 그 길은 전혀 배움이 없는 길이라고 나는 그대에게 지적하는 바다. […]” (B2) 있지 않은 것은 알 수도 지적할 수도 없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은, 비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정제되고, 변화와 운동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파르메니데스에게 존재의 성격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1) 생성/소멸하지 않음, (2) 온전한 한 종류임, (3) 운동하지 않음, (4), 완전함. 이러한 성격들은 상식과 감각에 반하는 주장이나 논리상으로는 필연적 귀결이기 때문에 후대 철학자들에게 ‘파르메니데스 콤플렉스’를 안겼다. 의견편에서는 불과 흙이라는 두 아르케를 제시하고, 그들의 섞임으로 세상의 생멸과 변화를 설명한다. 진리편과 모순되는 주장으로 보이지만, 자연의 실제 모습(physis)에 대한 반성적 인식으로 기존의 설명 방법을 고차원화 시키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논(Ζήνων ὁ Ἐλεάτης, Zeno of Elea, B.C. 490? ~ 430?)과 멜리소스(Μέλισσος, Melissus, B.C. 470 ~ 430)는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서, 그의 사상을 널리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제논은 역설(paradox; para- (거스르다) + doxa (의견))을 이용해 운동과 여럿의 존재를 부정했다. 연장(延長, extension)을 가진 정지를 아무리 합치더라도 운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 이외에 둘 이상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존재의 수는 무한히 발산하기 때문에 여럿이 있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고도 주장했다. 멜리소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서 존재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한계지워지지 않은 무한한 존재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외에도 파르메니데스의 진리편을 명료하게 정제하여 후대 철학자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제6장 다원론자들

엘레아 학파는 자연철학의 논의를 질료와 형상의 차원에서 존재와 운동의 차원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파르메니데스 콤플렉스라는 철학적 난제를 낳았다. 있지 않는 것에서 있는 것이 나올 수 없으므로 생성과 소멸, 변화와 운동은 있을 수 없다는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삼라만상과 모순을 이루고 있었다. 다원론자들의 시도는 이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엠페도클레스(Ἐμπεδοκλῆς, Empedocles, B.C. 494? ~ 434?)와 아낙사고라스(Ἀναξαγόρας, Anaxagoras, B.C. 500? ~ 428?)는 비교적 파르메니데스를 충실히 계승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에는 빈 것(kenon)도 없고, 넘치는 것도 없다네.” (단편 13) 이들은 파르메니데스의 비존재 부정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데모크리토스와 대조된다. 엠페도클레스는 “불과 물과 땅과 한없이 높이 있는 공기”(단편, 17. 18)를 세상의 네 뿌리(rhyzomata)로 상정했다. 네 뿌리가 사랑과 불화의 원리에 따라 혼합하고 분리하면서 삼라만상을 이룬다는 주장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엠페도클레스의 ‘방출설’에 따른 인식 이론이다. 인식 대상으로부터 방출된 ‘방출물(인식 모상)’이 인식 주체의 감각기관에 접촉하면 감각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 모델은 훗날 관념론과 대응되는 경험론의 모체로 보인다.

아낙사고라스는 “수적으로도 작음에서도 무한”(단편 1)한 “만물의 씨앗들(spermata)”이 자연현상을 이룬다고 보았다. 이 주장은 제논의 무한분할 역설을 의식한 주장으로 보인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이 씨앗들은 아무리 작게 분할하더라도 또 그보다 작게 분할될 수 있고, 분할되기 이전의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모든 개별자는 모든 질적 특성을 갖고 있으나 특정한 특성을 지닌 씨앗들을 많이 갖게 되는 경우 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엠페도클레스와 달리 원자적 수준에서도 질적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발생론적 최초의 상태는 모든 씨앗들이 고르게 섞여 질적 특성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인데, 지성(nous)이 씨앗들을 분화하고 서로 다른 비율로 섞이도록 만들었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아낙사고라스는, 지성이 ‘회전 운동’을 통해 씨앗들을 움직이게 한다고 설명하여, 최초로 운동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철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단, 아낙사고라스의 지성은 플라톤과 이후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간학적 지성이 아니므로 좋음의 원인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파르메니데스의 비존재 부정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어떤 것(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있지 않은 것)보다 더 있지 않다.” (단편 156) ‘있지 않은 것'(kenon)을 허공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운동의 가능성을 주장한 것이다. 나아가 데모크리토스는 아낙사고라스와 달리 무한 분할 가능성을 부정하고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atom; a- (부정) + tomoi (나누다)) 개념을 도입했다. 발생론적 최초의 상태에서 다양한 삼라만상이 나타난 기원도 우연으로 본다. 원자들이 무게에 의해 서로 충돌하며 회전운동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분화와 결합을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데모크리토스는 쾌와 불쾌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함으로써 후대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가 열 인간 중심 철학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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