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은 잘 사는 것과 잘 행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옳은 길을 선택해 꾸준히 가면 그 길의 끝에 행복이 있다.”
이 글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저, 강상진, 김재홍, 이창우 역, 도서출판 길)”을 읽고 제 나름대로 요약 및 해석한 글입니다.
이 책의 목적
행복이 무엇인지, 즉 좋은 삶과 좋은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사람들마다 다르다. 사람들은 주로 즐거움을 행복과 연계하여 향락적인 삶을 추구한다. 교양 있는 사람은 명예와 탁월성을 추구하는 정치적 삶을 산다. 관조적 삶은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므로 추후에 다룬다. (5장) 플라톤이 제시한 좋음의 이데아는 이 물음에 충분히 답할 수 없다. 흰색이 눈과 연기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좋음이라는 이데아가 삶과 행위에 각기 다르게 적용하기 때문에 공통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삶과 행위에 적용되지 않은 좋음의 이데아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삶과 행위에 적용되지 않으면 인간에게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6장)
행복의 정의
행복은 ‘잘 사는 것(eu zen)’과 ‘잘 행위하는 것(eu prattein)’이다. 다시 말해, 옳은 길을 선택해 꾸준히 가면 그 길의 끝에 행복이 있다. (4장) 모든 기술(techne)과 학문(methodos), 그리고 행위와 선택에는 어떤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는 ‘좋음’이다. (1장) ‘가장 좋은 것(ariston)’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데, 첫째는 ‘행위될 수 있는 것들(prakton)이어야 하고, 둘째는 그것을 그 자체 때문에 바라야 하며, 셋째는 그것으로 인해 다른 것들을 바라야 한다. (2장) 다시 말해, 행복(eudaimonia)은 인간 행위의 최상의 목적이다, 인간은 행복을,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행복이기 때문에 추구한다. 다른 모든 행위들은 행복의 수단이 된다. (4장) 행복은 완전하며 자족적(self-sufficient)이다. 부족함 없이 스스로 충분한 것이 행복이다.1) 행복은 그 자체 스스로 자신의 원인이 되고 다른 무엇을 원인으로 갖지 않기 때문에, 인과의 사슬에서 최상의 지위를 차지한다. 인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언제나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행복 때문이다.
잘 사는 것: 즐거움과 운, 타인의 평가
행복은 가장 좋고, 가장 고귀하고, 가장 즐거운 것이다. 좋은 것과 고귀한 것, 즐거운 것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삶을 산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외적, 육체적, 영혼적 측면을 전부 고려해야 한다. 이로 인해 행복은 행운(eutychia)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8장) 불운을 당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평가받을 수 없으므로, 행운도 행복의 필요조건이다. (9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은 행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활동들은 행복에 결정적이며, 안정성(bebaiotes)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운과 불운은 인생에 수시로 겪는 부침으로, 그에 따라 삶을 평가하기엔 안정적이지 않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행운과 불운을 품위 있게 견뎌낸다. (10장) 사람들은 명예로운 사람들에게 칭찬하는데, 신적인(완전한) 인간은 ‘행복한 인간’이라고 칭찬받는다. 그러므로 행복은 명예롭다. (12장)
잘 행위하는 것: 행위 → 습관 → 성격 → 행복
행복은 인간이 갖고 있는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할 때 성취된다. 인간은 식물적(생장) 기능, 동물적(감각) 기능을 갖고 있지만, 행복과 연관되는 기능은 인간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이성(logos)이다. 이성을 잘 발휘하는 삶은 능력(dynamis, 선천적으로 주어진)에 따른 삶이 아니라 활동(energeia, 습관에 따라 형성되는)에 따른 삶이다. (7장) 탁월성은, 좋은 성격(hexis)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성격에 따른 행위를 할 때, 성취된다. (8장) 탁월성은 배움과 노력을 통해 성취되며, 이에 따라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9장) 영혼의 측면에서 보자면, 행복은 완전한 탁월성을 추구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인간의 영혼은 이성이 없는 부분(식물적, 비이성적 부분)과 이성을 듣고 따를 수 있는 부분(욕구적(동물적), 중간적 부분), 이성을 자체 안에 가지고 있는 부분(이성적(인간적) 부분)으로 나뉜다. 탁월성은 욕구적 부분과 이성적 부분에서 성취되는데, 자제력 있는 사람(enkrates)은 욕구적 부분에서 성격적 탁월성을 성취한다.2)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가진 사람은 이성적 부분에서 지적 탁월성을 성취한다.
1) 여기서 ‘자족’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 타인과 동떨어진 무연고적 자아로서 자족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자족을 의미한다.
2) 자제(enkreteia)와 다르게 절제(sophrosyne)는 비이성적 부분에 평가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