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양고대철학1(강철웅, 박희영, 이정호, 전헌상 외 저, 도서출판 길)”을 읽고 제 나름대로 요약 및 해석한 글입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야기의 시대로
제1장 그리스 철학의 탄생
이 장은 철학사 탐구의 학문적 가치와 학문으로서 철학의 기원을 밝히는 장으로서, 자세히 요약할 필요가 있다. 철학사는 어떤 사유가 탄생한 배경과 맥락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철학사 공부를 통해, 과거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여러 철학적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관찰하고,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사유 구조를 도입할 가능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라는 독특한 사유 방법이 탄생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정치, 경제 등 여러 측면에서 그 기원을 추리할 수 있다. 그러나 주된 영향은 종교적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종교의식과 합리적 사고방식.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피아(olympia)와 카타크토니아(katachtonia)라는 종교의식을 통해 신화(mythos)를 생활 속에서 접했다. 종교의식을 통해 신화는 이야기로 전승됐다. 완전한 신과 불완전한 인간을 대비하여 성역(聖域)과 속역(俗域)을 구분하는 양극적 태도는, 연속적으로 감각되는 외부세계를 언어를 통해 잘라내(horizein)어 정의(horismos, definition)하는 인식론적 구분을 가능하게 했다. 나아가, 구분된 양 극단을 아우르는 비가시적 상위의 개념을 떠올리는 유비추리도 종교의식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철학적 사고에 필수적인 합리성의 기반이 됐다.
둘째, 문학으로서 신화와 형이상학적 사고. 그리스인들은 믿을 만한 권위를 가진 신들의 이야기(mythos)와 따져 물어 밝혀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logos)를 구분했다. 신화를 통해 그리스인들은 이야기 만들기(mythopoiesis), 즉 줄거리 구성에 익숙해졌다. 나아가 신화는 생성과 소멸을 설명하며 원인(aitia)을 중심으로 인과율적 사고를 시작했다. 따라서 이야기의 관심은 이미 있는 것에서 있어야 할 것으로 옮겨갔다. 역설적이게도, 그리스인들의 따져 묻는 습성으로 인해 만물의 근원(arche)에 대해 신화적 설명방법을 거부하고 신의 보편적 속성과 우주의 법칙에 대해 논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형이상학의 기틀을 다졌다.
셋째, 객관화된 신과 인식론적 사고. 그리스인들은 다른 원시 문명과 마찬가지로 의인화된 신을 섬겼다. 그러나 신을 기복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원시 신앙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신(theos)을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거리를 함축하는 행위(tithemi, to put)와 연관지어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은 신을 의인화하고 각각의 신에 대해 고유한 신격과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감정을 배제하여 신을 인식론적 대상으로 상정했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객관적, 개념적으로 신을 이해하는 인식론적 바탕이 됐다.
넷째, 능동적 운명관과 가치론적 사고. 그리스인은 인간을 유한한 존재자로 인식하고, 신을 완전한 존재로 생각했다. 신화는 모든 현상의 원인을 신에서 찾았으므로 신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이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이와 동시에 인간을 그 운명 안에서 신의 완전성에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능동적인 존재로도 여겼다. 이러한 태도는 탁월성(arete)을 추구하는 가치론적 사유로 발전했다.

제2장 밀레토스 학파

철학은 합리적인 설명 방법을 채택하여, 과거의 설명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창의적인 설명 모델을 도출한다는 행동 양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철학은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 지방(현재 터키 서부)의 밀레토스라는 도시국가에서 시작되었다. 밀레토스학파의 학자들이 서로 치고받은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크라테스 이전 고대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수행한 독소그라피(doxography)를 통해서만 살펴볼 수 있으므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직접 발언하거나 기록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탈레스(Θαλής, Thales, B.C 625? ~ 546?)는 철학자로 기록된 최초의 인물이다. 이집트에서 수학을 배워 그리스에 최초로 수학을 도입했다.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신화를 빌리지 않고 자연현상 안에서 그 근거를 찾은 최초의 인물로 평가된다. 만물의 근원(arche; 사실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사용한 용어이고, 탈레스를 비롯한 다른 자연철학자들은 쓴 적이 없다)으로 물을 들었다. 탈레스가 그리스의 서사시인이자 역사가 호메로스와 동향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메로스는 강 같은 바다가 땅 주변을 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의 신인 오케아누스(oceanus)와 바다의 신 테튀스(tethys)를 근원적 존재와 유사하게 본 것이다. 그리스와 이집트 사이에 위치한 밀레토스의 지리적 특징을 고려할 때, 강 문화권으로 형성된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문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도 추측해볼 수 있다. 나아가, “만물은 신들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자연현상을 의인화된 개별적 신들의 능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자연현상이 보편적 자연법칙 아래 놓여 있음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 Ἀναξίμανδρος, Anaximander, B.C 610 ~ 546)는 만물의 근원으로 어떤 질료적 존재를 제시하는 탈레스의 주장을 거부했다. 예컨대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면, 물이 아닌 것들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그 무엇으로도 특정할 수 없는 무한자(혹은 무한정자, apeiron)를 아르케로 제시했다. 무한자는 물질 이전의 상태로서, 무한자로부터 ‘분리’를 통해 뜨거움, 축축함과 같은 대립자(최초의 물질)들이 나타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천체의 운동을 원운동이라는 수학적 궤도 모델로 설명하고 태양을 뜨거운 불덩어리라고 표현하여, 대해 아폴론의 ‘불타는 마차’와 같은 신화적 설명방식을 거부했다. 나아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므로 어딘가에 지탱될 필요가 없다거나, 인간이 물고기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으며, 기상현상이 물질의 무거움과 가벼움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하여, 탈레스가 ‘신들로 가득찼다’고 주장한 자연현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아낙시메네스(Αναξιμένης, Anaximenes, B.C 585? ~ 525)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을 부정했다. 물질 아닌 상태에서 물질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질료적 근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아낙시메네스에 따르면 만물의 근원은 공기(aer)이다. 공기는 희박이나 응축과 같이 다양한 변화를 겪어도 그대로 공기로 남기 때문이다(가장 형상적인 질료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따라서 다른 물질들이나 자연현상의 변화는 공기의 희박과 응축을 통해 나타난다. 공기는 스스로 원인인 존재로서, 그리스인들이 신을 생각한 것과 같이, 영원하고 죽지 않으며, 신성한 존재였다. 생명을 숨과 연관짓거나, 다양한 기상현상을 공기의 압축 정도에 따른 변화로 설명한 것은 이전 학자들보다 정합성을 갖춘 설명 방식이었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리어 탈레스의 주장이 가진 약점을 수용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제3장 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Πυθαγόρας, Pythagoras, B.C 570 ~ 495)와 그의 추종자들은 철학자라기보다 종교인에 더 가깝게 행동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피타고라스가 직접 발견하거나 증명했다기 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널리 전파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욱 적절하다. 철학사에서 피타고라스라는 인물이 독자적으로 차지하는 역할은 크지 않다. 피타고라스의 사상에서 영혼불멸과 윤회사상을 찾아볼 수 있고, 테트락튀스(tetraktys; 1, 2, 3, 4개의 점으로 쌓은 정삼각형)의 균형과 음계이론을 통해 수학적인 방법으로 우주를 해석하고자 시도한 점이 눈에 띈다. 수와 음은 공통적으로 관념(질료 없는 형상)적이라는 특징을 읽어낼 수 있으므로 우주론에서 질료를 배제한 시각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피타고라스보다 오히려 그의 제자가 후대 플라톤의 형이상학에 끼친 영향에 주목해보아야 한다.
필롤라오스(Φιλόλαος, Philolaus, B.C 470 ~ 399)는 한정하는 것들(perainonta)과 한정되지 않은 것들(apeira), 그리고 그들 사이의 조화(harmonia)로 세상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필롤라오스는 당대 자연철학자들 사이에 논의되던 ‘질료냐 형상이냐’ 하는 문제를, 마치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와 같이, 종합하고자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다. 필롤라오스의 이론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우주론과 인식론을 ‘한정자-비한정자-조화’라는 삼각구도로 모두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롤라오스는 우주의 중심에 화덕(hestia)이 있고 그 주위에 천체들이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불이라는 한정되지 않은 것에 중심이라는 한정하는 것을 조화시켜 우주와 만물이 생성된 것이다. 한정하는 것들에는 중심이나 숫자와 같이 기하학적이거나 수학적인 것들이 해당되고, 한정되지 않은 것들에는 불이나 물, 흙처럼 질료들이나 시간, 허공 등이 해당된다. 한정되지 않은 것들과 한정하는 것들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현대적인 언어로 해석하면, 연속적이어서 인식 불가능했던 존재들을 인식 가능하도록 단속적으로 만든다(한정한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한정하는 것들은 인식의 필요조건으로 기능한다. “모든 것이 한정되지 않은 것들이라면, 애초에 앎을 가질 것이 없을 것”이라든지 “알려지는 모든 것은 수를 갖고 있다. 이것 없이는 아무것도 사유될 수도 알려질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언급은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던 비트겐슈타인의 언급을 떠올리게 한다.
